매일신문

신경제상품 문화(13)-일본-야마가타국제다큐영화제

일본 동부지방 남서부에 위치한 야마가타현은 곡창지대이면서 버찌, 복숭아 등 과일도 많이 생산되는 풍요의 고장이다. 동해까지 뻗은 자오산과 검은소 화우가 대표적인 명물.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스키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동경에서 신칸센을 타고 3시간 정도 달리면 야마가타현을 대표하는 야마가타시에 닿는다.

인구 25만명, 주요 간선도로가 왕복 2차선에 불과한 야마가타시에 첫 발을 내디디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민들만 간혹 눈에 띄는 한적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단풍이 곱게 물드는 10월, 영화의 물결이 다시 한번 도시를 물들이면 세계 영화관계자들의 시선은 야마가타시로 집중된다.

격년제로 10월 초 1주일 일정으로 열리는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는 시 승격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지난 89년 시작되었다. 시민들의 제안으로 결성된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당시 서구에서 확산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다시 보기 풍조에 힙입어 특색 있는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잡았다.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만들 경우 적극적으로 작품을 출품하겠다는 일본 영화감독들의 후원과 92년 56세로 사망한 일본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인 오가와 신스케가 야마가타 주민으로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아시아지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1회 행사부터 40여개국 200여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심상치 않은 출발을 보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출품 작품과 수준이 높아져 지난해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치러진 7회 영화제에서는 70여개국 550여편의 작품이 경쟁부문, 뉴아시아 커런츠 부문 등에 출품되었다. 우리나라 황윤 감독의 '작별'이 뉴아시아 커런츠부문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김소영 감독의 '하늘색 고향'이 같은 부문에서 특별언급 되기도 했다.

영화제가 열리기 전 야마가타시는 이름 없는 지방도시에 불과했다. 국제적인 교류도 없어 외국인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들 사이에 가보고 싶은 선망의 도시로 자리잡았다. 영화제가 시작되면 실행위원회 사무국이 위치한 야마가타시 공민관 프레스센터는 외신기자, 일본 국내 신문, 방송, 월간지, 주간지 기자 등 300여명의 취재진들로 북적된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국제적인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인의 철저한 준비정신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시의 후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로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를 이끌어 냈으며 영화제 기간을 단풍철과 연계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영화제 기간동안 야마가타행 신칸센 자리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실정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시민들은 적극적인 영화 관람을 통해 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진귀하고 가치 있는 영화를 보기 위한 시민들로 100명에서 1천2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8개 상영관은 거의 만원을 이룬다.

영화제가 끝나면 영화보는데 지친 시민들이 한달동안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시민들의 호응은 대단하다.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영화제 기간동안 안내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영화제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또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공민관, 시민회관, 영화관 등 기존 시설을 활용해서 영화제를 개최한 것도 눈여겨 볼 점이다. 영화관 관계자들도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위해 기꺼이 스크린을 내 놓았다.

시에서는 영화제에 필요한 예산의 대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영화제 예산 1억7천700만엔 가운데 80%를 시에서 부담했으며 나머지를 국제교류기금과 일본문화진흥회재단, 기업협찬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시는 영화제 운영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영화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한 운영위원회에서 영화제 운영에 대한 큰 틀을 마련하면 사무국에서 실무적인 일을 처리한다.

이와 함께 경쟁부문에 오른 15편 작품을 필름박물관에 보관, 언제든지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94년 40억엔을 들여 건립한 필름박물관에서는 영화 감상은 물론 필름 대출까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금의 50%를 영화 감독에게 전달, 저작권 보호와 창작의욕을 돋우는 사후관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선진 문화도시 구축을 외치고 있지만 내세울 만한 문화상품이 없는 대구시는 인구가 대구의 10분의 1에 불과한 야마가타시의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성공 비결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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