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제11대 종정으로 추대된 법전(法傳.77) 스님은 한국 불교의 전설로 남은 '봉암사 결사'에 참가한 이래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한 정통 선승(禪僧)으로 평생 참선과 함께 손수 농사를 지으며 불교계의 청정수행 풍토를 이어왔다.
5척의 단구이지만 단호한 체격과 눈매를 지닌 법전 스님은 평소 종도와 불자들에게 오로지 정진과 맡은 바 소임 완수를 강조해온 산중의 어른으로 '절구통 수좌'로 불린다. 한번 정진에 들었다하면 며칠간 잠을 자지않고 절구통처럼 앉아 용맹정진에 임한다.혜암 전 종정과는 성철 스님을 함께 시봉한 이력으로 법력과 수행풍이 유사한 점이 많다.
평소 묵언으로 일관하며 엄격한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다정다감한 성품으로 대중들을 보살피기도 했던 스님은 통영천제굴에서 정진할 때 약단지를 공중에 매달아 저울처럼 추를 달아놓고 성철 스님을 시봉한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청소와 빨래.군불때기 등 하루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이같이 약농도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다른 상좌들이 "법전의 발꿈치만 따라가라"는 호령을 듣기도 했다는 것. 1925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속명 김향봉.金香奉)한 스님은 14세에 영광 불갑사에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48년 백양사에서 만암(曼庵)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이듬해 성철.청담 스님과 '봉암사 결사'에 참여해 '타사시구자'(拖死屍句子: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를 화두로 정진했으며,1951년에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을 은사(恩師)로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파계사 성전암에서 성철 스님이 10년간집밖에 나오지 않고 정진하는 '동구불출'(洞口不出)에 들어갈 때 철조망을 친 장본인이다.
이런 인연으로 성철 스님을 평생 노장(老長)으로모시게 됐으며 지금도 성철 스님 문도회의 회주이기도 하다,1952년부터 창원 성주사.문경 갈평토굴.태백산 도솔암.문경 대승사 윤필암과 묘적암 .김용사 금선대.범어사.해인사 등 제방선원을 다니며 참선수행했다.
종단이 어려울 때인 1980년대 초 중앙종회의장과 총무원장을 잠시 지낸 스님은 곧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와 1985년부터 해인사에서 8년간주지를 맡았으며, 1996년부터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됐고, 2000년 10월부터 원로회의 의장을 지냈다.
"승려는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고, 수행자의 모든 위상은 수행에서 나온다", "이세상 모든 문제가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다. 적게 갖는데 만족하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을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이번 종정추대회의에서는 해인사의 독주를 이유로 숭산 스님을 내세운 덕숭문중을 비롯한 타문중의 반발도 없지 않았으나 법전 스님의 교계 지위나 산중 어른으로서의 종단내 신망이 이같은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가야산 해인총림은 이에 따라 고암.성철.혜암 스님에 이어 이번에 법전 종정을 배출, 해인사의 법맥이 잇따라 조계종 종통을 승계하게 됐다. 법전 새 종정은 "불교계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은 초파일 전인 4월 중순경종정추대법회를 열 예정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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