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특히 도시인들의 탈출욕구는 봄바람 따라 커지기 마련. 이맘때면 주위에서부터 "어딜 갈까"하는 전화가 잦아진다. 이번 주말엔 그들에게 자신있게 권해보자. 시간·비용면에서 내게 꼭 맞는 부담없는 여행을 떠나보자고.
경북 예천의 의성포 마을. 그곳에 가면 뛰어난 봄 풍경도 있고 물론 우리 모두의 고향같은 촌사람들의 정감도 만나볼 수 있다.
바다를 향해 흐르던 강물이 몸을 뒤틀었다. 가만가만 쉼 없이 가기는 싫었던 모양. 강물이 굽이쳐 흐르면서 바깥쪽으로는 점점 땅을 잠식하고 안쪽에선 모래를 쌓아 나온다. 마침내 마을을 350。 휘돌아 흐르고서야 제 갈 길을 찾았다. 그 물굽이 안쪽 동네가 물도리동. 하회(河回)마을이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2리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물도리동을 볼 수 있다.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육지속의 섬' 의성포(회룡포로 알려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의성포를 고집한다. 마을에서 다리 건너편이 회룡동네다).
경주 김씨 아홉가구가 사는 이곳 풍경은 마을앞 비룡산 자락에 올라야 제대로 보인다. 장안사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절 뒤쪽 산길을 5분 정도 오르면 팔각정 회룡대(해발 190m)에 이른다.
이곳이 의성포를 바로 내려다보는 전망대인 셈이다. 한눈에 꽉 차는 풍광이 한 폭 수채화다. 사진 찍는 것조차 잊게 한다. 한바퀴 휘감아 흐르는 푸른 내성천과 금빛 백사장이 내륙속의 섬마을을 껴안고 있다. 우리가 사는 가까운 지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그림 같다.
대개 풍경들은 멀리서 보면 실제 이상으로 아름답다. 그림 속에 들어가듯 의성포 마을 안으로 들어가보자. 장안사에서 돌아 내려와 평지에 다다를 무렵 오른쪽으로 난 비포장 임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의성포 들머리인 회룡동네가 나온다.
동네 끝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백사장에 내려서면 이색적인 풍경이 반긴다. 도회지 공사판에서 이사왔음직한 철판 다리가 이쪽저쪽 모래밭을 이어준다. 구멍이 쏭 쏭 뚫린 다리판을 살금 살금 건너보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휘어질 정도로 발을 굴리며 건너면 언제 주민들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차라리 6년전 이 다리가 놓이기 전 동네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고 건너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마을 전체가 6만여평. 대구 월드컵 경기장 넓이가 1만5천평 정도인 데 비하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입구 들판에서는 봄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비닐하우스 농사 준비에 주민들은 변덕스런 봄날씨도 잊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다 고추를 심어놓은 은재영(76) 할머니가 날씨가 춥다며 소매를 끌고 하우스 안으로 안내한다. 경치좋은 곳에서 사니 좋겠다는 인사에 '뭘 모르는 소리'라는 투다. 평생을 강물 속에 갇혀 살아왔고 요즘은 차가 없어 장날 구경도 제대로 못한다고 한다. 하긴 이곳엔 가게도 없다. 안동에서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1t 트럭 잡화상이 생필품을 공급해준다.
같은 물도리동이라도 30㎞쯤 떨어진 낙동강 본류의 안동 하회마을과는 대조적이다. 양반 동네인 하회마을과 달리 이곳엔 입장료가 없다. 관광지로 개발이 안 돼 민박할 변변한 집은 커녕 입맛 다실 분식집조차 없다.
그래서일까. 조상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이곳이 깔끔하진 않지만 오히려 서민적이고 정답다. 어디 이만한 경치를 품고 있으면서 오염안된 자연그대로의 마을이 있을까. 그래서 KBS에서 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장면(1-3회, 5회 일부)을 이곳에서 찍었을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30분이면 족하다. 백사장으로 되돌아 나와 때이른 물장난을 해도 좋다. 어느 곳이든 깊이가 무릎 정도까지다. 그늘이 귀해 여름엔 땡볕을 견디기 어려우므로 물놀이는 지금이 적기.
왜 이런 지형이 생겼는지 미리 알고 가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준다면 교육적으로도 효과만점. 돌아오는 길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세금을 내는 석송령(예천군 감천면 천향리)과 인근의 나일성천문관(054-654-4977)을 둘러볼 만 하다. 천문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천문대는 천문 관련자료를 수백점 수집·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어 체험학습장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가는 길
대구~중앙고속도~예천IC~예천읍~문경방면 34번 국도. 예천공항을 지나 처음 나오는 회룡포 안내판을 무시하고 용궁면까지 바로 가는 것이 좋다. 용궁면소재지서 찾아가는 길이 쉽기 때문. 용궁면 입구 도로 건너편에'가을동화 촬영지'라는 큰 안내판있는 곳에서 좌회전하면 용궁면 소재지다. 면사무소 조금 못미처 좌회전하면 된다. 여기서부터 회룡포까지 6㎞.
▨맛집
용궁면 역앞에 있는 박달식당(054-652-0522)의 순대 맛이 유명하다. 주인 아줌마가 이틀에 한번꼴로 직접 만들어낸다. 점심때면 줄을 서야할 정도로 인기. 인삼동동주(3천원)와 함께 먹는 순대 맛이 일품. 한 접시에 5천원. 양도 푸짐해 혼자서 먹으면 배가 부르다. 석쇠로 구워낸 매콤한 오징어구이(5천원)도 별미. 시장안쪽에 단골식당 등 순대집 두군데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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