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1일 아들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한 것은 아들과 친인척의 비리로 정권의 도덕성이 뿌리째 뽑혀 나가고 있는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그동안 청와대내에서는 대통령 아들의 비리와 관련, 월드컵 대회가 끝난 뒤 임기말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사과의 뜻을 밝히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뤄왔다.
임기가 아직도 8개월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정권의 도덕성과 관련된 사과를 하는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례에서 보듯 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날 전격적인 대 국민 사과는 셋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까지 비리 혐의로 구속된 마당에 이같은 전술적 시기의 조절은 국민들에게 꼼수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김 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김 대통령은 이날 사과에서 "통절", "참담", "부끄러움" 등 갖은 수사를 동원해 자식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김 대통령이 동원한 어휘들은 그동안 측근들을 통한 대리사과나 국무회의·부처업무보고에서의 육성사과 때보다는 상당히 강도가 높은 것들이었다.
김 대통령은 또 두 아들의 비리 때문에 "저의 처신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했다"고 말해 아들문제에 대한 사과 이후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음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김 대통령이 국정에서 한발 물러서 총리에게 내정 전반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심사숙고 결과 "자식들의 문제는 법에 맡기고 저는 국정에 전념해 모든 소임을 완수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들문제는 법의 판단에 맡기고 자신은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김 대통령의 뜻이 관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김 대통령의 사과가 내용면에서 이전보다는 진전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후속조치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서 이어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한 아태재단 폐쇄 또는 사회환원, 김홍일 의원 민주당 탈당, 거국 중립내각 구성 등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
후속조치없는 사과만으로 돌아선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여론의 역풍을 다시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치된 시각이다.
청와대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아태재단 처리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적절한 후속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같은 후속조치들이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렸다는 느낌을 줄 만큼 단호해야 하는데 과연 김 대통령이 이런 자세를 보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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