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4월 대구시 정보화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한달 뒤 티아이엔씨, 대구은행, 금융결제원 3자간의 협약에 의해 첫발을 내디딘 대구의 전자화폐 사업(디지털 대구카드 사업)이 1년이 넘도록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구의 전자화폐 사업추진이 차질을 빚는 원인을 분석하고, '디지털 대구카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사업부진 원인=가장 큰 이유는 사업시행 전에 계획했던 대규모 투자유치(약 840억원)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특정업체의 투자유치 약속만 믿고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과 전문인력 확보를 소홀히 한 채 사업시행에 들어가면서 온갖 부작용을 양산해 낸 것이다.
비록 초기 투자유치 계획은 실패했지만, 대구의 전자화폐 사업에 매력을 느낀 많은 투자자들이 앞다퉈 투자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에는 지역사회가 너무나 분열되어 있었다.
전자화폐 사업 추진과정에서 소외됐던 지역유관 사업자들은 비판과 부정적 여론으로 투자자의 투자의지를 위축시켰고, 투자자들은 또 서로간 음해(?)와 공작(?)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애썼다. 대경교통카드와의 협의 성과도 지지부진했고, 대구지하철은 대경교통카드 및 국민패스카드와 계약을 체결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티아이엔씨와 대구은행, 금융결제원간의 협조도 원활하지 않았다. 금융결제원은 티아이엔씨의 자회사 디지캐시의 정산시스템(VAN) 승인을 뚜렷한 이유없이 지연시켰고, 티아이엔씨와 대구은행은 서로 '비협조'와 '불신'을 나무랐다.
이런 혼란속에 대구시 담당부서는 "전자화폐는 민간사업이다"며 정책적 행정적 해법제시와 중재역할을 포기함으로써 대구의 전자화폐 사업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게 됐다.
◇시행착오의 교훈과 투자자 확보=티아이엔씨나 디지캐시는 지난 1년간의 시행착오 과정에서 전자화폐 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노 하우'를 터득했다고 볼 수 있다. 뚜렷하지 않았던 사업주체로서의 정체성도 차츰 윤곽을 잡아갔다.
티아이엔씨와 디지캐시는 투자자들이 구축한 지역의 전자화폐 인프라를 관리하는 사업자로서 정산시스템(VAN)을 운영하거나 인프라의 유지.보수 등을 맡고, 또 전자화폐 인프라를 활용한 다양한 부가서비스 사업에 지역기업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전자화폐 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
투자자들로부터 문서화된 투자의향서를 확보한 것도 성과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1년간 검토와 논란의 결과, 대구 전자화폐 사업의 문제점과 가능성이 다 드러난 만큼 사업추진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이 주어지면 당장 투자에 나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A사는 대중교통 분야에 100억원을 투자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B사는 관심있는 투자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프라 구축 비용 290억여원 전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C사 역시 대구의 전자화폐 사업이 투자타당성과 회수가능성이 높다고 관심을 표명했다.
◇인프라 구축비용 감소=대구 전자화폐 사업을 시작할 때, 인프라 구축비용이 최소한 600억원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덕분에 단말기 등의 가격이 폭락, 현재 전체 인프라 구축비용은 300억원에도 못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국 지역별로 다른 전자화폐를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도 개발됐다. 기존의 멀티SAM(Secure Application Module) 방식을 채택할 경우 단말기 교체비용 이외에도 로열티 명목으로 50억~60억원의 진입비용과 정산수수료, 카드독점공급권 등을 특허권자에게 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모든 종류의 스마트카드 단말기에서 사용이 가능한 '스마트카드 통합 COS(칩운영체제)'가 개발돼 골치아픈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성공조건=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들이 확신을 갖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사업주체로서 티아이엔씨나 디지캐시 등의 위상을 확고히 해주려면 대구시는 정책방향을 분명히 하고 행정적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 대구은행은 지역중심 금융기관으로서 그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부산의 부산은행은 마이비의 대주주로서, 대전의 하나은행은 200억원이 넘는 투자를 함으로써 각 지역의 전자화폐 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 반해 대구은행은 너무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권이 걸린 사업에서 업자간의 마찰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구시와 관련 기관들이 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민생활의 편리'와 '지역경제 발전'에 목표를 둔다면 어렵지 않게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법원장회의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독립 반드시 보장돼야"
李대통령 "한국서 가장 힘센 사람 됐다" 이 말에 환호나온 이유
李대통령 지지율 50%대로 하락…美 구금 여파?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 본회의 부결… 의회 앞에서 찬반 집회도
조희대 "사법개혁, 국민에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 공론화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