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 서 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교단 앞에 서 있으면 학생들의 행동거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경력이 더해갈수록 작년보다도 올해가 더 잘 보인다. 어느 때는 너무 잘 보인다는 게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안보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일을, 꼭 한 마디 주의를 주고 넘어가자니 피차간에 스트레스만 쌓이게 된다.
유난히 덩치도 크고 눈매가 선량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복도에서라도 마주치면 시원스레 인사도 잘하고, 수업 후에는 강의실 청소며, 궂은일도 앞장서 하는 무척이나 심성이 착한 학생인데, 어쩐지 이론수업 시간에는 표정이 영 아니다.
손으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는데, 이놈이 또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는게 아닌가, 입으로는 설명을 계속하면서 슬그머니 그 친구 주위를 한번 휙 돌아 나온다. 사정거리(?)에 접근할라치면 그리던 노트를 슬며시 덮고 열심히 교재를 들여다 보는 척 한다.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보아도 이 친구의 솜씨는 상당한 수준이다. 한번은 강의 중간 휴식시간에서 돌아와 교재를 펴니 책 사이에 강의하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 슬며시 꽂아놓았다.
내가 봐도 얼굴의 표정하며 곱슬머리의 표현감 등 영낙없는 나로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었다. 모르는 척 교재를 펴고 다시 강의를 시작한다. 슬금슬금 이 친구의 얼굴을 보니 발각되어 또 한소리 듣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근심 어린 표정이 배어있는 듯하다.
전에도 몇 번 불러 면담을 해봐서 대략은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그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는 유달리 관심과 소질이 있었던 이 친구에게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과 부모님의 기대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합작품은 이 젊은이에게는 정말로 견디기 힘든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소질과 흥미는 무시되고 붕어빵틀 내에서 운신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얼마만큼의 손실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야기하는 둘 사이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대화를 마치고 나가는 이 친구 뒤에서 혼자 되뇌인다.
나는 네가 수업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 아니 나는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라고. 교육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사업 중에서 정말 힘든 것이 아닐 수 없다.
동양대 교수·디지털패션디자인학 전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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