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문 (가)와 (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고전적 명제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두 글을 읽고 이 명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띄어쓰기 포함 1600±100자)
(가) 국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속하며, 또한 사람은 본질적으로 국가에서 살도록 되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어떤 우연에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질상 국가가 없는 사람은 보잘것 없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인간 이상의 존재이다.
이런 사람을 호메로스는 다음과 같이 비난하였다. '부족도 법도 가정도 없는 자-성질상 국가가 없는 자-즉 국가에서 살 수 없는 자는 곧 결정적으로 전쟁을 즐기는 자이다. 그는 마치 장기판에서홀로 튀어나온 말과도 같다'.
사람이 벌이나 혹은 다른 군거동물(群居動物)들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집단 생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정치적 결사에서 산다는 이유는 명백하다.우리들의 이론에 의하면 자연은 아무 뜻도 없이 어느 사물이고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동물 중에 유독 사람만이 언어의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그저 고통이나 쾌락을 나타내는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모든 동물에게도 있다.
즉 그들의 본성은 그들이 고통이나 쾌락을 느끼고 그것을서로에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정도이다. 그러나 언어는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유리하지 않은지, 따라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올바르지 않은지를말할 수 있게 한다.
다른 여타의 동물들과 비교하여 볼 때 사람의 독특한 점은 사람만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또는 다른 유사한 성질들을 인식할 수 있는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공통되므로 가족이나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즉 개인이나 가족이 시간으로는 국가에 선행하지만 논리적으로는 국가가 개인이나 가족에 선행한다.그 이유는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에 선행하기 때문이다.
만일 신체가 전부 파괴된다면 팔이나 다리만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 예외적으로 사람들이 모호하게 같은 말을 사용하여 다른 뜻을 나타내는 경우는 있다.
즉 석상(石像)의 손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는 몸 전체가 부서진 후에도 '손'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만물의 근본적인 성격은 그들의 기능과 능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어떤 것이 더 이상 그것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을 같은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 용법의 모호성 때문에 같은 이름으로 불릴 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개인에 선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명제의 증거는, 국가는 전체이며 개인은 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들은 고립되어서는 자족적(自足的)일 수 없으므로 전체(국가)에 모두 같이 의존하여야 한다. 그리고 국가만이 자족한 상태를 이룰 수 있다.
고립된 개인은-즉 정치적 결사의 혜택을 타인과 더불어 누릴 수 없거나 이미 자족해 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는-국가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금수(禽獸)이거나 아니면 신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
(나) 모든 인간이 반드시 '사회적 동물'인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교언(巧言)도 없다.'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나 '인간은 유희하는 동물' 등의 정의는 그런대로 인간의 양태를 적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인간은 상징적 동물'이라든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같은 정의 역시 인간의 양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적절히 조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는, 인간이 '사회'라는 부자연스런 조직과 굴레에 갇혀 여러 가지 규율과 제도, 법 등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을 누구나생래적으로 원하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의 자유 추구와 행복 추구를 은연중에 부정해 버리는 일면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개인'보다는 '전체'를 우위에 놓고서 모든 이상을 가꿔가게 만들고, '전체'라는 애매모호한 의인물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하다는 식의 생각을 합리화시켜 버리게 만든다. 인간은 사회라는 조직에 당연히 예속되는 부속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이전에 '개인적 동물'인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형성하게 된 것도 단지 편의상의 일시적 방편에 불과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빨리 진화하게 된 것은 '손'을 가졌기 때문이고, 또 직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빙하기를 피해서 살아남기 위해 '불'의 사용법을 알게 된 것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집단적 질서 유지를 위해 사회적 통합체 따위를 만든 것이 인간 진화의 직접적 촉매제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소집단을 형성한 것은 오직 '사냥의 효율성'과 맹수로부터의 안전 확보를 위한 일시적인 계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집단적 안전 유지를 꾀하다보니 그 가운데 강자가 나타나 '권력'을 기도하게 되었고, 따라서 인간 개개인은 맹수나 천재지변으로부터 받는 위협보다 '권력자'로부터 받는 위협에 더 시달리게 됐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기보다 '사회를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동물'에 더 가깝다.인간이 사회를 싫어하는 동물이라는 증거는 인류 사상사의 궤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인류의 사상사는 한마디로 말해 '사회'를 '개인'보다 우위에두는 사상가 그룹과 '개인'을 '사회'보다 우위에 두는 사상가 그룹 사이의 투쟁사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사상사는 '사회'를 부정하는 개인주의자들을 대부분 '아웃사이더'로 배척하여 희화화시켜 버렸다. 동양의 양주(楊朱)나 장자(壯子) 같은 이들이 그러하고 서구의 에피쿠로스(Epicuros)나 사드(Sade)같은 이들이그러하다. 이들은 대개 개인적 삶의 실현과 개인적 쾌락의 실현에 생의 가치를 두었다.
인간은 때에 따라 '사회적 동물'이 됐다가 '개인적 동물'이 됐다가 하면서 왔다갔다 한다. 사회적으로 지배적 기득권층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경우에는'사회적 동물'이 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개인적 동물'이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자신이 사회적 동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사실상 별로 없다.지배 엘리트로서의 기득권층에 속하는 인간은 소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마광수, '인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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