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대선유감

동서양과 고금을 꿰뚫는 일 중 하나가 『정치란 윤리적인 인간이 할 짓거리가 못된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 희극작가이자 시인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선동정치가들을 이렇게 비방했다. 『오늘날 정치는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정치는 불학무식(不學無識)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다』.

600여 년을 건너와도 사정은 비슷하다. 3세기 중엽 로마 교황을 지냈던 디오니시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라를 멸망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동 정치가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이라고. 그리고 다시 1천700년.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정치는 기만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루시초프 소련 총리의 말이다. 『정치가란 결국 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따위의 인간들이 아닌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마음이 편치 않아진다.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의 지도자성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 없는 미래를 강변하며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선동과 느낌으로 세상을 주무르겠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 남의 발걸음을 좇으려다 자신의 발걸음을 잊어버린 한단지보(邯鄲之步)의 주인공들. 뱉어내는 공약 속에서 나라걱정이나 애족충정의 고뇌를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 선거는 우리의 장래를 결정짓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북 핵사태 해결, 미.중.일.러와의 관계 재설정, 시장개방, 자유무역협정 등 발등의 불인 국제 문제가 산적해 있다. 국내적으로는 가계파산.가정붕괴, 근로.사업의욕 파탄이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 유지의 물적.정신적 기반이 망가진 상태다. 넘쳐나는 것은 실업자 군상(群像) 뿐. 상황이 이런데도 대선 후보자들의 시각은 너무 태평스럽다. 약을 주는 게 아니라 병을 주기에 바쁘다. 국민을 우중화(愚衆化)하려는 기도까지 느껴진다. 세계화의 냉엄성을 외면한 채 우리만의 우물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머리를 스친다.

과거를 망각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냉정하게 지난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보고 선동 정치가들에게 놀아난 과거가 없었던 지를 자성해보아야 할때다. '신한국 건설', '준비된 대통령'을 외쳤던 그들은 국민에게 고통만 안겼다. 물정 모르는 YS는 외환위기를 불러들여 나라 살림을 파탄지경으로 몰았다.

DJ는 준비된 내채(內債) 위기를 불러들였다. 공적자금으로 북한에, 부실기업에, 측근비리에, 복지사업에 물 쓰듯 써댔다. 그 결과 나라나 국민이나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더 이상 『대통령 잘못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후회를 해서는 안된다. 세계가 우리를 용납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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