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읽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사랑이 떠난 자리는 헛간에 떨어지는 의미 없는 달빛과 같다.
그것은 등 굽은 노인이 우주 속을 홀로 건너고 있는 하얗게 바랜 소금의 시간이다.
한때 뜻있게 빛나던 촛불과 안개와 눈물까지도 모두 허망한 열망이 되어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근다.
그리고 오래 사랑을 빈집에 가둬버린다.
이별의 어법이 김소월 이후 많이 달라져 있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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