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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3월에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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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봄눈이 내리고 있다.

눈은 언제 찾아와도 반가운 손님 같다.

하물며 때아닌 봄눈이라니 설레이 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누군가 밤새 머리맡에 두고 간 선물처럼, 우편함에서 갓 꺼낸 한 통의 편지처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언제부턴가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 차례 눈이 기다려졌다.

3월에 내리는 눈은 글썽글썽 눈물 매달고 다시 돌아와 창가에 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자 같기도 하고, 이른 봄산에 아릿한 생강내가 묻어나는 생강나무의 노르스름한 꽃물 같기도 하다.

김춘수 시인은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고 노래했던가.

내가 사는 마을에도 종일토록 봄눈이 내린다.

나는 그리움의 산란을 찾아 나서듯, 온 마을의 수런거리는 뒤안길로 발자국을 찍는다.

호주머니 속에 있어도 늘 시린 손끝을 위해, 살아질수록 두꺼워지기만 하는 껍질을 위해, 바위 틈으로 자꾸만 몸 숨기는 여린 풀의 멍든 가슴을 향해 걸어간다.

사스레나무가 아물지 않은 상처의 붕대를 풀어내듯, 오랫동안 덮어둔 내 뒷모습에 눈이 닿자 그만 핑그르 눈물이 된다.

눈가로 눈물을 매달아 본지 언제인가. 그렁그렁 손끝으로 매달리는 울음들, 내 안으로 저무는 눈발을 따라 촉촉한 길이 하나 생긴다.

이제 곧 팍팍한 대지에 아지랑이 같은 더운 눈물이 돌겠다.

잠시 세상의 시간으로부터 걸어나와, 낡은 신발 한 켤레 거꾸로 벗어두고 마음의 문고리를 잠근다.

내안으로 눈 덮인 잡목림이 자라고, 옹담샘이 눈 비비면, 내 맨발은 노루의 발자국처럼 눈 내리는 소리따라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를 걸어갈 것이다.

걷다, 걸어가다 보면 우리의 삶에도 가끔은 기다리지 않은 편지가 도착하기도 하겠지. 3월에 내리는 봄눈처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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