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의원님들이 예산을 깎아버려 올해는 예산을 지원하지 못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올해 분까지 감안해 반드시 배정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국회에서 장관이 국회의원에게 한 말이 아니다.
놀랍게도(?) 90년대 초 부산시장이 지하철 건설 및 운영비 배정을 요청하는 부산교통공단 이사장에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다.
국가가 90%의 지하철 예산을 대면 10%는 반드시 분담하겠다고 약속했던 부산시가 부산시의회의 예산 삭감을 빌미로 어겨버린 것. 당시 부산교통공단 실무 관계자는 "대구시는 지하철 예산의 70%를 분담하는데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푸념하곤 했다.
다음해 예산을 짜는 '예산 국회'가 다가오면 대구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모임을 갖고 국비 요청 내역서를 두고 협의한다.
한 푼이라도 더 지원받기 위한 '작전 회의'다.
내역서에는 어김없이 지하철 예산이 최상위에 랭크돼 있다.
덩치가 가장 큰 때문.
국회 상임위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재경위, 건교위, 예결위 회의가 열리면 지역 의원들은 말끝마다 지하철을 거론한다.
지하철 1호선을 착공해 비용 부담이 커진 지난 93년 이후 10년간 늘 그랬다.
그러다 보니 우선 순위에서 밀린 다른 예산은 반영되지 않기 일쑤다.
대구의원들이 그렇게 10년동안 정부와 씨름해서 얻은 결과는 정부와 지자체가 지하철 건설비용을 반반 분담한다는 원칙이다.
덕분에 인천, 광주, 대전 의원들은 큰 힘 들이지 않고 국비 분담률을 높였다.
부산 의원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온갖 지역 예산을 챙겼다.
이상배 의원보좌관 이동창씨는 "대구 의원들이 지하철에 매달려 다른 예산을 양보하곤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안타깝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며 "지금 지하철을 국가에 넘기지 못하면 앞으로 20~30년간 계속 지하철 예산에만 매달릴 것"이라고 했다.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지 지하철을 정부가 통합 건설 운영하는데 따른 이점도 적지않다.
현재 전국의 지하철은 제각각 건설되는 바람에 전동차 크기와 부품 등 사양이 달라 호환성이 없다.
일정 규모 이상은 국제 입찰을 해야돼 납품사를 일괄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양이라도 같아야 호환성을 확보,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예산을 집중 투자해 공기를 줄이는 것은 엄청난 공사비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건교위 소속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은 "정부 예산을 집중해 공기를 단축하면 공사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력의 집중화, 공사 장비 투입의 집중화에 따른 효과란 설명이다.
박 의원은 또 "공기가 늘면 시설물이 비와 바람에 장기간 노출돼 공사 자체가 부실해질 수 있다"고 했다.
(가칭)한국지하철공사 설립 요청이 정당한 요구라는 주장의 근거다.
각 시도의 지하철공사를 통합하면 인력 절감 등 운영비 절감 효과도 크다.
퇴직공무원이 주로 맡는 공사 사장만도 3, 4명 줄일 수 있다.
사장이 본부장급이면 충분하다.
게다가 안전 요원 운용, 직원 교육 등에 필요한 부대 비용 절감액도 만만찮다는 전문가의 진단이다.
또다른 기대 효과는 사업성 예산 부족으로 경색돼 있는 대구시 사업이 활성화돼 지역 경제 활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구시의 올해 일반회계는 1조7천억원에 이르나 경상비와 부채 상환액(5천억원)을 빼면 순수 사업성 예산은 2천억원에 불과하다.
250만명이 사는 도시에 사업성 예산이 2천억원이라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대구시 관계자의 푸념이다.
김인환 대구시예산담당관은 "대구시는 신규 사업을 거의 하지 못할 형편"이라며 "지하철을 정부가 맡아주면 당장 350억원에 이르는 운영적자 부담이 없어지는 등 대구시에 크게 도움된다"고 말했다.
대구 시민은 또 자동차 등록시 구입하는 공채를 사지 않아도 된다.
올해 책정된 지하철 차입금은 모두 1천200억원으로 대부분 대구 시민이 분담하는 도시철도채권으로 차입금을 충당하고 있다.
지하철 공사설립이 필요한 이유고 설립 효과가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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