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특산품인 복수박을 처음 재배해 복수박 신농씨(神農氏)로 불리는 농민 박연거(51)씨. 그는 1992년 봉화군 농정 발전의 공로로 군수상을 받았다.
이듬해인 1993년 농협에서 주는 새농민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4년에는 농산물 품질 향상의 공로로 춘양농협상과 내무부장관상, 대통령상 등 한해 동안 무려 3차례씩이나 큰 상을 받기도 했다.
그후에도 1997년 새농민 본상과 농림부 장관상을 잇따라 수상한 그는 봉화군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고랭지 봉화지역 시설원예를 선도해 온 그가 지난 15일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농사에만 열심이던 그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지난 1986년 귀농해 농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만 17년째. 17일 오전 그의 장례식이 열린 봉화 춘양농협 앞 도로변에는 이웃인 춘양면민들이 나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모두들 말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농사일 차림의 한 아낙네는 울먹이며 말했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은 끝이 이거라니요. 기가 막힐 뿐입니다.
어디 이게 남의 일입니까. 두 부부가 농사일에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농협 빚이 기어이 생사람 잡은 게지요"
운구행렬이 생전에 가꿔 온 딸기농장인 '부부농원'으로 향하자 주민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 줄지어 뒤를 따랐다.
박씨 부부 이름이 나란히 쓰인 간판이 세워진 1천여평의 딸기밭. 그러나 춘양농협 대출금 횡령사건이 터진 지난 7일부터 일손을 놓아버려 주인 잃은 딸기밭은 제때 수확되지 못한 딸기들이 짓물러 터지고 있었다.
전국농민회경북연맹의 농민장으로 치러진 이날 장례식. 평생을 농사꾼의 아내로 살아온 박씨 부인의 끝없는 흐느낌에 하늘도 우는 듯 내내 봄비가 내렸다.
"여보, 사랑하고.... 미안해. 나 살고 싶었는데 (농협빚)3억이.... 다음부터는 농민시대가 오기를.... 농민이 잘사는 농촌으로..."
가물가물 의식을 잃어 가면서도 자신이 진 빚을 자책하고 '잘사는 농촌'을 바라며 황급히 띄엄띄엄 쓴 박씨의 유서. 과연 무엇이 그의 억장을 무너져 내리게 했을까. 박씨의 유서에 대해 농협은 애써 면피성 변명만 늘어 놓을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농가부채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진솔된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 농민을 위한 농협 본연의 도리가 아닐까.
권동순(사회2부)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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