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은 우리 모두를 너무나 행복하게 했던 '한 여름밤의 꿈'이었다.
온 국민은 붉은 악마가 되어 열광적으로 응원했고, 우리 선수들과 국민들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룩하고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성공적인 최고의 대회로 멋지게 치러 내었다.
그런데 월드컵조직위원회는 갑자기 월드컵 4강 신화를 기념하기 위해 월드컵 대회 수익금 1천600여억원 중에서 총 1천50억원을 들여 대형 기념관을 새로 짓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기념관은 프랑스 파리 과학공원 내에 세워진 구형(球形)의 영화관 건물을 본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기념관 건립 사업이 적절한지에 대해 몇 가지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나라경제도 어려운데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1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새로운 대형 기념관을 짓는 것이 과연 필요하고 타당성이 있는지를 우선 냉철히 따져 보아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서울 월드컵 주 경기장을 비롯, 온 국민의 응원함성이 메아리쳤던 10개 경기장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월드컵 기념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름답고도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인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상암동 주경기장의 실내 공간을 활용하여 각종 영상기록물, 사진 자료, 태극전사들의 유니폼과 붉은 악마들의 응원도구, 기념품, 국내외 보도기사, 평가 보고서 등 각종 자료를 모아 알찬 내용물을 갖춘 월드컵 기념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온 국민과 함께 월드컵 신화를 창조한 월드컵조직위원회가 기념관 건립사업으로 대회 수익금을 낭비, 시민단체로부터 '밑 빠진 독상'을 받게 될까 걱정된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에서 훌륭한 주 경기장 시설을 놔두고 별도의 월드컵 기념관을 지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실도 지적하고 싶다.
둘째, 파리에 있는 둥근 구조물의 기존 영화관을 모방한 월드컵기념관을 새로 짓는다는 발상은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기념 건축물'은 그 시대, 그 나라의 예술적 독창성과 건축과학기술이 총체적으로 결집될 때 비로소 문화적 자산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외국구조물을 모방한 모작 건축물을 세우는 것은 월드컵 축제를 통해 전 세계에 심어놓은 '문화한국'이미지에 반하는 졸렬한 발상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셋째, 온 국민의 성원과 땀의 결실인 1천600억원의 월드컵 수익금이 밀실협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배분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월드컵 수익금의 효과적인 사용방법은 시간 여유를 갖고 공청회, 인터넷 여론조사 등 국민의 폭 넓은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야 될 것이다.
옥상옥이 되기 쉬운 월드컵 기념관의 신축을 위해 1천50억원을 써버리는 것보다는 지방분권화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낙후된 지방도시의 문화향수 기회의 확대와 체육진흥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해 월드컵 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생산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 개최 10개 도시에 지역 문예·체육진흥기금의 확충을 위한 종자돈으로 지원하고 유·소년 축구발전기금에도 일부 배정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서울에 있는 월드컵 주경기장의 기념박물관 외에 월드컵 개최 9개 도시에서도 월드컵 경기장의 옥내 공간을 활용하여 작지만 알찬 월드컵 기념박물관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각 도시마다 월드컵의 관련 자료를 수집·전시하여 그날의 영광과 애국심을 되살리고 시민의 단합된 힘과 열정을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월드컵 경기장이 시민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문화공간이 될 뿐만 아니라 소중한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사후 보존활용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신형웅(전 문화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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