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주이민 100년...(12)-(4)멕시코=힘겨운 현지적응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유카탄의 관광·문화·교육 중심도시 메리다가 나온다.

이 도시 주위로 수백㎞에 걸쳐 끝없이 펼쳐진 평원 곳곳에 신소재 나일론에 밀려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애니깽 가공공장이 남아 있고 인근에 제멋대로 자라는 애니깽 군락과 옛 농장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곳은 1905년부터 고달픈 애니깽 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한인들의 이민 애환이 서린 중심무대. 4년간의 노예노동에서 풀려난 한인들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며 정착하거나 다른 지역이나 쿠바 등 중남미와 미국으로 진출했던 시발지이기도 하다.

이민 1세대는 모두 죽고 없는 지금, 이곳에는 메리다 300여명을 비롯해 1천200~3천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멕시코시티에도 2천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멕시코 북서쪽 국경지대의 티후아나와 탐피코, 베라크루스, 코앗사코알코스, 푸론테라 등 전국에 흩어진 후손을 포함하면 멕시코의 한인후예는 1만~3만명으로 늘어난다.

한국계임을 숨기거나 조상의 실체를 모르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최대 5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민 2세까지는 순수 한인혈통이 주종을 이루지만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70~90대 고령자만 극소수 생존해 있다.

한국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3세는 90%, 4세는 99% 가량이 혼혈이어서 현지인과 구별되지 않는다.

고국의 동포들에게서 잊혀진 이들 대부분은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5~7세대까지 대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메리다의 선교사 조남환(46) 목사는 "같은 피의 배우자가 태부족, 마야족 등 멕시칸과 혼혈이 대대적으로 이뤄져 순수혈통은 거의 없다"면서 "본국으로부터 장기간 소외된 이민 한인들이 멕시코인의 동양인 배척주의와 생소한 문화권 속에 살아남기 위해 생존방법을 찾다보니 현지에 동화돼 동포끼리도 단절되고 민족동질성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차팝 온칸 클린체 이사말 창마이 녹악 사낙다 차팝 체투말 캄페체 등 유카탄의 여러 지역에서 취재팀이 만난 한인후예들은 예외없이 "대한사람이 왔다"고 반기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만큼 조상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컸고 인생역정이 고단하다는 뜻이다.

메리다 동쪽 80여㎞ 지점에 자리잡은 우라칸마을의 마누엘 바께비로 최(72)씨. 그는 전기·수도시설 등 문명혜택이라곤 전혀 없는, 당장 쓰러질 듯한 4평 크기의 초라한 양철지붕 움막에서 찌그러진 그릇 몇개와 부모와 함께 찍은 흑백 가족사진이 전부인 살림살이로 부인(66)과 딸 외손자 등 3대에 걸쳐 6명과 함께 궁핍하게 살고 있다.

한국말을 배운 적이 없는 최씨는 "어릴 때 본 아버지는 애니깽농장에서 가축처럼 혹사당해 새까맣고 주름진 피부를 가진 비참한 모습이었고, 나도 아버지처럼 죽도록 고생하다 마야 여인과 가정을 이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생활 속에 순수 한인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최씨 집에서 남서쪽으로 25㎞ 떨어진 한적한 농촌에서 마야인 남편(76)과 7명의 자식을 낳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벨리시타스 산체스 보트(62·여)씨는 "아버지가 16세 때 멕시코로 끌려와 원주민과 결혼, 고국말을 빨리 잊어버리고 동포사회와 멀어진 뒤 40세에 일찍 폐렴으로 죽기까지 한국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 내가 유카테코(마야족)인줄 알고 살아왔다"며 "몇년 전 아버지의 자료를 들고 찾아온 조 목사를 통해 한국 핏줄임을 알고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유카탄 이외에 다른 지방의 오지로 흘러들어간 후손들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고 율리세스 박 이(63) 메리다 한인회장은 강조한다.

그는 "부랑자 출신과 나이 어린 이민자들은 한인사회와 한글학교의 혜택을 받지 못해 쉽게 모국어를 잊어버리고 고립돼 형편없는 생활로 자식교육이 불가능, 후손들은 마야어 등 원주민 말만 사용하는 극빈층으로 남아 자신의 근본도 모른다"고 밝혔다.

또 한인들은 가시가 많은 애니깽을 맨손으로 자른 원주민과 달리 장갑을 만들어 끼거나 헝겊을 사용, 작업능률을 배가하는 등 자질이 우수해 현지인들이 사위감으로 선호하면서 현지동화가 더 빨라졌다 한다.

현지적응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씨도 크게 달라졌다.

김씨는 가르시아 킹 킨 퀸, 이씨가 디아스 히 히시, 박씨는 팩 박케이도, 최씨는 산체스 쳉에, 장씨가 창 찬, 고씨는 코로나, 서씨가 소사 등으로 바뀌어 단번에 한국계 성임을 알기가 어렵다.

"억만→오크만"의 경우처럼 이름이 성씨로 변한 사례도 많다.

오랜 유랑생활이나 빈곤한 살림으로 가족묘도 없이 아무 곳에나 혼자 쓸쓸히 묻혀 후손들에게마저 잊혀진 이민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한인 후예들은 아무리 멕시코에서 나고 다른 인종과 혼혈을 거듭해 오래 전에 민족언어와 관습을 잃어버리고 뿌리조차 알지 못해도 현지인들로부터 "코레아노"로 불리기 일쑤다.

지구 반대편에서 1세기가 다 지났건만 배달민족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버림받다시피 한 이들을 한국정부 차원에서 배려해야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유카탄=강병균기자 사진=강선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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