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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위기의 '국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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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동양 3국의 실록문화를 비교해보면 조선왕조실록이 역사적 가치에서 그 으뜸이라 할만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사론(史論)이라는 것이 있다.

하급 관리인 사관이 자신이 듣고 본 바에 따라 왕과 대신들의 행적과 언동을 평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관의 비리, 인물평 등이 낱낱이 기록된다.

대신들은 혹 자신의 오명이 사론을 통해 청사(靑史)에 기록될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심지어 왕까지도 사관들을 의식할 정도니 그들의 붓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짐작케 한다.

중국이나 일본 왕조가 사론을 남기지 못한 것은 후대의 필화(筆禍)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초가 잘못 공개될 경우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걱정이 사론을 적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조선의 경우는 사초나 실록에 대한 철저한 보안을 통해 역사기록이 피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했다.

왕이 당대의 기록은 물론이고 아버지 대의 역사기록도 못 보게 함으로써 비판적 기록에 대한 정치보복을 원천봉쇄 한 것이다.

일부 왕들은 선대의 실록을 보려 안달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뜻을 접어야 했다.

연산군(燕山君)조차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발췌해서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철저한 역사기록 관리가 왕조의 부패를 막고, 관리들의 수신(修身)의지를 강화시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론은 현대적 의미의 사관이다.

민주주의의 발달로 역사기록이 그날그날 공개된다는 것이 왕조실록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왕조)로부터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지금이나 왕조 때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신문.방송사 윤리강령을 보면 독립성 구절이 예외 없이 나타난다.

최대의 언론매체인 KBS 방송강령에는 "(우리는 편성과 보도.제작의 자유를) 오직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만 책임 있게 행사하며…" "방송은 완전한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등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령이 지켜지나, 않나는 별개의 문제다.

▲KBS이사회가 신임 사장에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씨를 임명 제청해 한나라당과 KBS노조 등이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적법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임명 제청된 서씨의 정치적 독립성 또는 중립성을 수긍할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발탁의 이유가 된 그의 언론고문 경력이 임명을 곤란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다.

노무현 추종자에게 노 정부의 시시비비를 가려보라고 주문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국민의 방송'을 퇴행시키는 이런 인사 제청은 노 대통령의 '원칙'을 허무는 일이 될 수 있다.

사관의 자격으로 손색없는 인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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