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덕 해안도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탁 트인 시야, 길게 이어진 수평선, 갈매기들의 날갯짓,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생각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고 새로운 힘이 솟는 듯하다.

사람들이 계절에 관계없이 바다를 동경하는 것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꽃 피는 4월.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해안도로 그 어느 곳을 찾아도 즐겁지 않은 곳이 있겠냐마는 청정 동해를 끼고 있는 동쪽 바닷고을 영덕의 해안도로로 차머리를 돌려보면 어떨까. 마침 12일부터 대게축제도 있고 복사꽃축제도 연이어 열린다고 하니.

총 연장 32.5㎞의 영덕 해안도로 시발점은 몇 년 전 TV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이후 전국적인 명소가 된 강구항.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상하다 보면 처음으로 바다가 보이는 포항시 송라면 화진리에서 20㎞정도 떨어져 있다.

강구항 중심가는 복잡하다.

대게 전문식당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데다 식당 맞은편 부두에 공영주차장과 어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혼잡할 땐 식당 종업원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도 하지만 차량소통보다는 호객이 먼저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이면 강구교를 지나 항 입구에서부터 어시장까지 1㎞도 채 안되는 중심가를 차로 지나려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감수해야 할 듯하다.

게를 찌는 냄새와 항구 특유의 비릿함이 뒤섞여 코를 자극하는 가운데 식당 앞 수족관의 게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른 지역에서 자란 게보다 다리가 길고 속살이 많다는 영덕대게에서부터 북한산 게, 러시아산 게 등 갖가지 종류의 게들이 들어 있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곧 어떤 일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고 체념한 듯 크게 움직이지 않지만 건드리면 긴 다리를 재빠르게 오므리기도 하고, 쑥 솟구쳤다가 가라앉기도 한다.

새로 개업을 준비하는 식당 입구에는 천천히 집게발을 움직이는 커다란 게 모형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북한산 게와 러시아산 게는 좀 싸지만 국내산 대게 맛을 보려면 상당한 지출을 감내해야 한다.

두 사람 정도 먹을 수 있다는 최상품(1.2㎏ 정도) 영덕대게 1마리의 경매가격이 10만원 가까이 하니 말이다.

식당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어른 손등보다 조금 더 큰 대게는 세 마리에 5만원 정도면 맛볼 수 있다.

밥값은 별도.

시끌시끌한 어시장 좌판에는 게에서부터 해삼, 멍게, 멸치 등 갖가지 해산물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며 널려 있다.

북한산 게는 영덕대게보다 껍질이 좀 시커멓고, 러시아산 게는 조금은 흉측하게 생겼다.

이곳 난전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먹어야 돼 조금은 불편하지만 머리 위에서 나는 갈매기가 군침 흘리는 소리를 들으며 회를 먹을 수 있다.

시장통 끝에는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에 반대하는 지역민의 민심을 대변해 주듯 '핵폐기물 처리장이 웬말이냐'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번잡한 강구항을 벗어나면서 전형적인 어촌 풍경이 펼쳐진다.

도로는 바다와 바짝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수면과 높이 차이도 별로 없다.

큰 파도가 일 땐 차도 일렁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난 포말이 차를 덮칠 듯하다.

조그마한 해수욕장이 있는 하저리 앞바다에서는 촌로들이 끝에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들고 파도에 떠밀려 오는 미역 줄기를 건지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나들이 왔던 사람들도 덩달아 바지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어른이나 애 할 것 없이 어디서 구했는지 손에는 작대기를 하나씩 들었다.

도로변 방파제와 갯바위에는 부인에게서 꽤나 눈총을 받을 듯한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창포리를 지나면 바다는 옆으로 직선거리는 그대로이면서도 도로에서 멀어진다.

도로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해맞이 명소가 있다.

창포해맞이공원과 영덕해맞이공원이 그것이다.

나무계단이 해변까지 이어져 산책하기에도 좋고 해가 뜨는 동해 반대편 산자락엔 진분홍색 참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기복이 심해 마치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타는 듯한 기분이 드는 도로를 조금 더 달리면 영덕대게 원조마을이라는 축산면 경정2리가 나온다.

고려시대 한 고을 원님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 이 마을에 왔다고 해서 '차유(車踰)마을'이라고도 한다.

대게 원조마을이라고 하지만 강구항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은 어촌마을이다.

'마을 앞에 우뚝 솟은 죽도산(竹島山)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비슷해 대게로 불리게 됐다'는 대게 유래가 적힌 자그마한 비석이 하나 있을 뿐이다.

항구 앞으로 삼각형의 죽도산이 하얀 등대를 이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인 축산항에서 해안도로는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항구를 돌아나와 대진해수욕장 방향으로 조금만 진행하면 곧바로 바다가 다시 보인다.

영해면 구간의 해안도로 일부 지역은 절개지에 낙석방지망이 다 갖춰지지 않아 조금은 아슬아슬하다.

그렇지만 빼어난 주변 경관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이내 사라지고 차는 영덕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의 하나인 대진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가득 찰 백사장은 아직 조용하다.

한 어민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그물을 던졌다 걷었다 할 뿐이다.

거의 엉덩이까지 올라오는 물 속으로 들어가 힘들게 그물을 치지만 허탕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그 어민은 오랜만에 올라온 고기를 작다며 다시 놓아줄 정도로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영해면과 병곡면 경계이기도 했던 송천 위로 지난 2001년 4월 고래불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강구항에서 출발하는 영덕의 해안도로 종점은 대진해수욕장이었다.

하지만 이 교량 개통으로 해안도로는 7번 국도와 다시 만나는 병곡면 병곡리까지 연장됐다.

고래불대교에서 영리해수욕장까지 2.5㎞ 정도 비포장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이 비포장 구간 포장공사는 5월초가 되면 완료될 예정. 그러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송림을 끼고 타원으로 펼쳐진 명사20리의 고래불해수욕장도 해안도로에서 바로 갈 수 있게 된다.

한편 연한 홍색의 꽃이 산과 들을 화사하게 수놓는 영덕 복사꽃은 이달 중순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이며, 영덕읍에서 안동 방면으로 이어지는 12km 정도의 34번 국도변이 가장 아름답다.

◇주변 가볼 만한 곳

영덕 앞바다 해안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연전망대이자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는 삼사해상공원과 한말 의병장으로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을 펼친 신돌석 장군 유적지, 20여개국에서 수집된 희귀한 화석 2천여점이 전시돼 있는 경보화석박물관이 7번 국도변에 있다.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린 뒤 7번국도를 타고 경주, 포항을 거쳐 영덕군에 진입하거나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 안동, 청송 진보면을 거쳐 영덕읍 진입.

글·사진: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