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감정 이렇게 풀자-뿌리깊은 갈등의 실체

정책 대결이 사라지고 지역감정이 선거판의 절대강자로 등장한 지 짧게는 14년, 길게는 32년이 지났다.

1971년 대선을 놓고보면 한 세대가 지났고, 1987년 대선 이후 강산이 한번 이상 변했다.

2002년 부산 사람이 호남인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됐다.

뿌리깊은 영호남 갈등 해소의 신호탄으로 봐도 좋을까. 우리보다 훨씬 뿌리 깊은 지역갈등을 지닌 유럽 7개국의 현실과 그들 나름의 해결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지역감정의 분수령이 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영호남 갈등의 실체와 유럽 각국의 지역갈등 실태, 갈등 해소의 대안 등을 10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

한달 간의 유럽 취재 중 취재팀은 현지 정치인과 대학교수, 언론인, 대학생 등 다양한 계층을 만났다.

지역감정에 대한 견해를 묻기 앞서 우리나라의 영호남 갈등을 납득시켜야 했지만 이들은 좀처럼 한국의 지역갈등을 이해하지 못했다.

"민족이 다릅니까? 아니면 언어나 종교가 다릅니까?" 그렇지 않다는 답변에 이들은 "그렇다면 경제적인 격차가 극심하군요"라며 되물었다.

영호남은 유럽 일부 국가처럼 지역간 소득격차가 3~5배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자 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럼 왜 싸웁니까?"

◇선거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 지역감정

1963년 5대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는 경북과 호남에서 고르게 득표했다. 지역감정이 선거판에 등장한 1971년 7대 대선에선 후보별 지지율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경북에서 박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표차는 52.3%포인트로 벌어졌다.

지역 몰표주기는 경북에서 선수를 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6년 만에 치러진 13대 대선(1987년)에서 잠재됐던 지역감정은 분출됐다.

잠재기에 군사독재가 있었고,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호남민들은 강한 응집력을 보였다.

15대 대선 당시 호남에서 후보간 표차는 91.1%포인트에 달했다.

그리고 지난해 16대 대선에서 대구.경북민은 74.5%를 이회창 후보에게 보냈고, 호남민도 93.3%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전격 지지했다.

수치상 지역감정은 30년간 악화일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6대 대선에 대한 다른 시각의 해석을 주문한다.

대구 학자들은 "과거보다 '우리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 지지율이 높아진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13대 이후 '다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5%, 8.9%, 13.1%로 차츰 높아졌고, 16대에 노 후보는 20%를 득표했다.

대구대 사회학과 홍덕률 교수는 "수치상 지역감정은 회복세지만 내년 총선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광주 학자들도 "호남의 90%대 지지율을 지역감정식 몰표로만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호남이 아닌 영남출신을 택한 것이 좋은 본보기. 광주대 사회학과 최준영 교수는 "90%대 지지율은 무조건적인 지역사람 찍어주기가 아니라 지역정서 및 개혁적 성향이 일치해서 나온 결과"라고 말한다.

또 경제개발과정에서 타지역 인구유입이 많았던 대구.부산 등 영남권과 토박이가 절대 다수인 광주 등 전라권 지지율을 단순히 수치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장기집권이 가져온 특혜의 허와 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권이 바뀌면서 '호남호황설'이 떠돌았었다.

광주의 한 일간지 기자는 "당시 광주가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호황이 아니라 더 나빠질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업 및 제조업체 숫자가 경상도의 1/5 정도에 불과한 전라도에선 구조조정의 충격이 적었다는 뜻.

'영남정권' 이전인 1960년 당시 제조업체수는 경상도가 전국의 35.4%, 전라도는 17.3%로 2배 차이였다.

2001년 광업 및 제조업체수는 영남에 3만1천137개, 호남에 6천488개로 4.8배 차이다.

영남정권의 특혜로 격차가 벌어진 것일까? 일제 강점기인 1922년 영남의 제조업 생산규모는 호남의 2배였고, 1931년 제조업 총생산에서 영남은 전국의 23.4%로 서울.경기조차 앞섰다.

한국전쟁 파괴율도 호남은 60%대, 경북은 39.7%, 경남은 18.7%에 그쳤다.

근대화는 자연스레 영남권에 집중됐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어떨까.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된 1987년 이후 대구는 단 한번도 광주를 앞서지 못했다.

1987년 9만5천원에 불과하던 차이(광주 205만5천원, 대구 196만원)가 2001년 153만2천원(광주 882만원, 대구 728만8천원)으로 16배 가량 증폭됐다.

경북 역시 1995년 이후 1인당 지역내총생산에서 전남에 뒤졌다.

호남민들도 볼멘소리다.

전남대 한 학생은 "DJ정권 5년간 호남이 얻은 것은 서해안고속도로 조기 완공뿐"이라고 말했다.

광주의 한 회사원은 "광(光)산업단지엔 러브호텔만 빼곡이 들어찼다"고 자조했다.

1980년대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호남지역에 공업단지를 대거 지정했지만 입주업체가 없어 미분양 투성이다.

성공회대 김동춘(사회과학부) 교수는 "경상도 정권이 보통의 대구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거의 없다"고 '대구에 대한 애증'이란 글에서 지적했다.

전남대 나간채(사회학과) 교수는 "광주에도 60년대 이후 끊임없는 특혜를 누려온 토착세력이 있었고, 정권이 바뀐 뒤에도 서민들에게 돌아온 몫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지역갈등 해소 노력

유럽 각국의 주민들은 타지역민에 대해 독설을 퍼부으며 배타적인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와 독일의 축구경기에서 "독일 이겨라"고 열광하고, 이탈리아 북부인들은 남부인에게 "게으르고 무능력한데다 마피아 손아귀에 놀아난다"고 비난한다.

독일내 동서독 주민들도 신랄하게 상대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지역정당 지지에는 인색하다.

지역분리론을 내세우는 스코틀랜드민족당(SNP)은 1997년 총선에서 6석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2001년엔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게으른 남부민들에게 더 이상 돈을 퍼줄 수 없다'며 독립을 외쳤던 이탈리아 북부동맹도 인기가 시들하다.

벨기에 플랑드르지역의 독립을 주도했던 플랑드르연대(VB)도 1999년 하원선거 때 지역득표율이 15%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의 알베르토 베르티첼리 기자는 "많은 주민들은 지역갈등을 정치인들만의 문제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지역감정이 정치판을 통해 증폭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상황.

중앙정부의 과감한 권력 이양도 지역갈등 완화에 큰 역할을 한다.

영국정부는 300년만에 스코틀랜드 자치권을 인정했고, 벨기에는 플랑드르(네덜란드어권)와 왈론(프랑스어권), 브뤼셀(양국어권)을 나누는 연방제로 국가분열을 모면했다.

동아시아문제 전문가인 서베를린자유대 볼프강 페니히(정치학과) 교수는 "한국 총선의 경우 정당들이 불리한 지역에선 아예 지명도가 낮은 후보를 내기 때문에 지역민이 다른 정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결국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작용을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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