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17일 새벽 5시46분 일본 열도. 인구 148만의 도시 고베에 재앙이 덮쳤다.
피해는 천문학적이었다.
사망 6천310명, 부상 4만3천188명, 이재민 29만여명, 건축물 피해 43만9천405동, 도로 1만69개 구간 파손, 고속 고가도 635m 파손, 신간선 고가철로 붕괴 9개 구간, 지하철 역사 붕괴 및 교각 파손 440개, 고베항 부두 시설 붕괴, 도시 전체 단전·단수…. TV를 통해 비쳐진 모습은 글자 그대로 참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난 3월 찾아가 본 고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 전체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고 표현될 만큼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그 사이 미래지향적 도시로 완전히 변모해 있었다.
재난 대책과 관련해서도 고베는 지진 당시의 소리와 진동을 재현해 소개하는 '사람과 방재 미래 센터'를 건립, 재해 경험을 미래의 방재대책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다시는 유사한 재해에 당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내보인 것.
현지 관계자들은 고베 참사 때도 인재 논란이 일었다고 했다.
지진 발생 64시간 만에 재해구조대가 도착하는 등 대처가 갈팡질팡했다는 것. 때문에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고베 참사가 일어나기 일년 전인 1994년 미국 LA지진 때 현장에 파견됐던 일본 건설성 조사단은 "미국의 교각이 너무 가늘고 철근이 적게 들어가 구조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었다"며 일본의 고속도로는 지진에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한 바 있기도 했던 터였다.
그러나 일본은 책임 소재를 가린다는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행정당국이나 시공업자에 대한 책임 추궁보다는 어떻게 하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느냐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 그 후 고베는 정보프로젝트를 수립, 문제점에 대한 내부 고발과 원인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책임 및 징벌적 배상 등의 제도도 만들었다고 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실패지식 활용위원회를 설립해 실패 지식의 국가적 활용 방안까지 연구하고 있었다.
실패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조사단을 파견했고 무려 100여명에 이르는 취재진까지 보냈다.
또다른 실패를 봐 둬야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고베는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들어 버린 지진 발생일을 지역이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고 했다.
재난을 문화로 인정해 피하기보다는 해결해 가는 '재난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었다.
고베 시민들은 지진 이후 '아이 러브 고베' 운동을 벌여 지역사회 결속을 다졌다고 했다.
그 덕분에 150만이 하나 돼 3년여 만에 복구에 성공,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모시켜 놨다는 얘기였다.
특히 고베 시가지는 단순 복구가 아닌 '새로운 도시' 건설을 추진, 인간과 자연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도시 설계에 반영하고 있었다.
21세기형 미래 주거지 건설에 성공한 것이다.
부흥주택 사업으로 건설된 공동주택은 주차빌딩을 별도 건립해 자동차와 보행자 동선을 완전 분리하는 등 안전과 도시 경관을 함께 고려한 새로운 주거개념을 형성하고 있기도 했다.
고베는 대구에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 듯했다.
김진걸(대구 북구청 건축주택과장,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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