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감정 이렇게 풀자(2)-스코틀랜드

한차례 여우비가 지나간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의 하늘은 더욱 청명했다.

최대 번화가인 프린시스거리엔 인파들로 북적였고, 곳곳에서 상가 리모델링이 한창이었다.

공사현장에서 만난 캐러번씨에게 "잉글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는 "정치적인 문제라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질문을 바꿨다.

잉글랜드와 독일의 축구경기에서 누굴 응원하겠느냐고. 빙그레 웃던 그는 "당연히 독일"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다른 근로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독일"이라고 외쳤다.

한때 스코틀랜드에선 '브레이브 하트 신드롬'이 사회문제가 됐었다.

'브레이브 하트'는 14세기초 잉글랜드 침공에 맞서 싸웠던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잉글랜드 병사들에게 사로잡힌 뒤 "자유!"를 외치며 무참히 처형당한 월리스의 모습을 본 스코틀랜드 일부 청년들은 잉글랜드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했다.

스코틀랜드 일부 대학에선 유학 온 잉글랜드 학생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700년전 벌어진 참살의 생채기는 아직 남아있었다.

대영제국이란 한 지붕 아래 사는 두 나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갈등은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족의 스코틀랜드와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는 11세기 이후부터 잦은 충돌을 했다.

11세기 후반 정복왕 윌리엄의 군대에 대패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브레이브 하트'의 영웅 월리스가 숨진 뒤 독립전쟁을 주도한 로버트 브루스에 의해 1328년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두 나라의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다.

한명의 왕 아래 2개의 국가라는 기묘한 체제는 1707년 두 나라가 통합될 때까지 이어졌다.

스코틀랜드계 왕조가 끊기고 잉글랜드계 왕조가 등극하면서 재차 독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력으로 진압되고 만다.

이후 스코틀랜드인들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소속원으로서 별다른 반감없이 잉글랜드와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갈등이 다시 불거진 것은 1970년대 석유파동 때였다.

영국이 장기불황에 접어들면서 제조업 중심이던 스코틀랜드는 실업 증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했다.

내심 기대했던 북해 유전도 잉글랜드인들의 배불리기에 동원됐고, 급기야 "북해유전과 위스키만 팔아도 잘 살 수 있다"는 분리독립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1934년 창당한 뒤 별다른 세력을 얻지 못하던 스코틀랜드민족당(SNP)은 1974년 영국 전체총선에서 71석의 스코틀랜드 의석 중 7석을 차지 스코틀랜드에서는 노동당에 이어 제2당이 됐다.

그러나 5년간의 노동당 집권이 끝나고 18년간의 보수당 장기집권이 이어지면서 분리독립 움직임도 힘을 잃고 말았다.

비록 정치적인 세력은 약화됐지만 오히려 주민 감정은 갈수록 반잉글랜드로 결집됐다.

결국 1997년 총선에서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건 노동당이 재집권했고, 같은 해 9월 자치의회 구성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돼 74.3%의 압도적인 지지로 스코틀랜드는 영국 통합 300년 만에 독자 의회와 정부를 갖게 됐다.

현재 스코틀랜드의회는 150여년전 지어진 스코틀랜드 교회건물을 빌려쓰고 있다.

내년이면 새로 지어진 의회건물로 옮길 계획이다.

새 의회건물은 영국 여왕이 방문할 때 머문다는 홀리루드 궁전 옆에서 한창 건설 중이다.

자치의회가 구성되고, 경제도 차츰 회복세를 보이면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주장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스코틀랜드민족당은 여전히 완전한 독립을 외치지만 주민들의 지지도는 시들해지고 있다.

지난 1999년 자치의회 총선에선 총 129석 중 33석(25.6%)을 차지했지만 지난 5월 총선에선 27석(20.9%) 획득에 그쳤다.

스코틀랜드의회 직원인 이안 라퍼티씨는 "분리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작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54살인 그는 "한때 독립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이젠 충분한 자치권을 획득했다"며 "잉글랜드에 대한 거부감과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마가렛 앨런씨는 "스코틀랜드는 이미 자치에 필요한 충분한 권한을 확보했고, 더 이상의 독립 주장은 무의미하다"며 "유럽연합(EU)에서 스코틀랜드는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역할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 주민들이 스코티쉬(Scottish)인 동시에 브리티쉬(British)이고 나아가 유러피언(European)으로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21세기 유럽통합의 시대에 굳이 민족적인 색채를 따져 분리 내지는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취재팀=서종철·김태형·김수용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