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아(亞)와 악(惡)은 그 모양이 말해주듯 뿌리가 같은 단어다.
옛날 중국 은(殷)나라에서는 대추장의 무덤을 지하 10여m의 깊이에 십(十)자 모양으로 팠다고 한다.
이를 상형한 문자 아(亞)는 뒤에 가리거나, 밑에 숨어 있다는 뜻으로 전의 됐다.
본류에 가리어 빛을 보지 못하거나, 주류에서 약간 벗어났다는 의미의 아류(亞流)는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악(惡)자는 아(亞)자에 심(心)을 보탠 글자다.
악은 '바탕에 깔려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순자가 말하는 '악이 인간의 참모습'이라는 성악설(性惡說)에서의 악은 '욕구불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명화된 현대사회의 병리를 말해주듯 근자 지구촌에서는 무차별 살인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 국민들이 '대외공포증'에 시달릴 정도로 무차별 살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가 싫다"며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을 마구 찌른 사건, "태풍이 반갑지 않다"는 이유로 행인들을 무차별 살해한 사건 등이 그런 예들이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일본 국민들의 독특한 의식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일정한 틀을 벗어나면 가차없이 왕따 당하는 사회가 일본이다.
이런 사회구조가 발랄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불만요인이다.
더욱이 전쟁세대나 고속성장세대들은 나름대로 목표가치라도 있었지만, 지금의 신세대들은 추구할 가치마저 상실한 상황이다.
암담한 사회환경과 자폐적 의식구조가 무차별 살인이라는 병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에서 있었던 무차별 저격사건은 같은 맥락의 사회병리라 할 수 있다.
원인이 좀 다를 지는 몰라도 욕구불만 즉 성악(性惡)의 경향이 깊어진 데 따른 범죄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증세가 점점 구체화 되고 있다.
어머니가 삼남매를 아파트 아래로 떨어뜨린 엽기적 사건이나 잇따른 자살사건들은 자신을 향한 살인이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방화범이 "혼자 죽기 싫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고백 또한 우리 사회의 욕구불만 수준을 웅변해준다.
▲어제 한 노숙자가 열차에서 자고 있던 승객을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범행이유를 "숨진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하는 것 같아서 찔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병리가 생각 밖으로 확대돼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목표가치를 잃어버린 욕구불만의 사회가 빚어낸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성악을 성선(性善)으로 바꿔줄 대대적인 사회운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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