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에펠탑, 바벨탑

한국.독일.일본인 세 사람이 파리 에펠탑에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독일인은 탑의 재질이 무엇인지 꼼꼼히 조사를 했고 일본인은 수첩에 열심히 도면을 그리면서 어떻게하면 자기도 이같은 탑을 세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면 한국인은 무엇을 했을까.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자, 다 올라왔으니 사진이나 한방 찍고 내려갑시다". 오래된 버전이지만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개그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 가운데서도 유독 에펠탑이 관광객의 인기를 끄는 것은 그것이 단순 철제 구조물인데도 높이가 320m에 달하는 위압적인 규모에 있다.

그 에펠탑 꼭대기에서 22일 화재가 발생, 3천여명의 관광객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으니 세계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사상자 한 명없이 40분만에 진화됐다고 하니 이름값에 걸맞은 그들의 사후 대응이 부러울 뿐이다.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1889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의 볼거리로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것이다.

19세기 말 왕성했던 산업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기술력의 '오만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당시로서는 신의 섭리에 또 한 번 거슬러 올라가는 바벨탑이었다.

지금은 높이만으로도 관광객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에 철골탑을 건설한다며 초기에는 반대가 심했다.

◆에펠탑 1층엔 모파상이 와서 종종 식사를 했다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나는 에펠탑이 보기 싫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는 이유는 이곳이야말로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거대한 철골구조물이 우려와는 달리 흉물로 전락하지않고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있는 것은 철강으로만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에펠탑은 새로운 미학적 상징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갔고 지금은 21세기를 당당히 이어가고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도쿄타워의 대부(代父)임을 자부하면서…. 그런 만큼 파리 시민들의 에펠탑 애착은 남다르다.

페인트가 벗겨지지 않았는지, 철골 이음매가 느슨해지지 않았는지 매일같이 점검한다.

불이 나도 별 탈없이 마무리되는 것도 시민들의 변함없는 에펠탑 사랑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에펠탑은 이제 프랑스인의 '파괴적 창조정신'으로 연결되고 있다.

과거의 꿈과 현실을 연결시켜 주는 파리지앵의 생명선이다.

와인 한병 들고 올라가 야경을 즐기는 '풍류'에나 젖을 구조물이 아니다.

무엇이 프랑스를 일류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에펠탑이 던져주는 화두(話頭)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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