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초호화판' 고교축제

우리나라 고교생의 90% 이상이 한국을 '부패사회'로 본다는 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하기야 국제투명성기구 등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 같은 사실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아시아 17개국 중 최하위'라는 비교조사 결과와 무관하지 않아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자신들이 어른이 되면 부정.부패가 더 심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는 과연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할지 난감해 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부패상에 대한 강한 반발과 위기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부정.부패는 줄을 서지 않는 얌체와 남이야 어찌되든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향연이다.

오래 차례를 기다린 사람과, 열심히 노력해 무엇을 얻은 사람들이 권리를 도둑맞는 세상에서는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는 야만의 정글 속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없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서울 강남의 일부 고교에서는 초호화판 축제가 붐인 모양이다.

댄스 가수 등 인기 연예인들을 불러 학교 운동장 무대가 격정적인 노래와 현란한 율동이 넘쳐나는 등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가 하면,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기도 한단다.

일부 학교들은 막대한 축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회 간부들이 사설학원 등을 대상으로 스폰서까지 구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 학교는 축제를 치르는데 2천500여만원이나 든 것으로 알려지지만, 이쯤 되면 학생들 사이에 '스폰서를 많이 확보하는 게 곧 학생회장의 능력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 경우 학교 지원금과 학생회비가 1천만원 정도 들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직접 구한 스폰서들이 부담했다니 어른들을 뺨치는 행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더구나 이런 분위기는 올해 3월에 있었던 일부 학교들의 학생회장 선거의 '공약'으로 예고된 일이라니 기가 찬다.

▲'입시 지옥'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잠시 스트레스를 풀고 젊음을 발산할 기회를 갖는 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축제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비의(秘義)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정도와 가치관이 문제다.

이젠 전통적인 고교축제의 단골 메뉴였던 각종 전시회나 연주회엔 지원이 거의 안 되고, 찾는 학생들도 뜸하다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일깨워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려면 어른들부터 달라져야만 한다.

윗물부터 맑아져야 아랫물이 맑아지게 될 것이므로….

이태수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