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풍 '매미' 한반도 강타-경북지역 피해현장

지난 봄 이후 계속된 비와 병충해로 수확기를 맞은 농촌 들녘에 드리운 폐농 먹구름이 태풍 '매미'의 강습으로 일순간에 폐허로 변했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져 사람들이 비명에 가고, 도로가 끊겨 주민들이 외부와 연락조차 두절된채 고립됐다.

제방이 터지면서 생명줄인 비닐 하우스가 뻘밭으로 변했고, 정전으로 양식장 패류가 집단 폐사해 농어민들이 실의에 빠져있다.

폭우로 불어난 강물이 휩쓸고 간 과수원에는 쓰러진 사과나무와 강풍에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구는 낙과들만 그득해 복구를 위해 들판을 나왔던 농민들의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역병으로 붉게 타들어갔던 고추밭도 폭우와 침수로 뻘밭으로 변해 더이상 건질게 없게 됐다.

일조량 부족으로 가뜩이나 불안하던 벼농사도 완전히 망쳐 버렸다.

◆안동

안동지역 최대 과수단지들이 밀집해 있는 안동시 길안면과 임하면 과수원 바닥에는 온통 강풍과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뒹구는 사과들로 가득했다.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김영한(61)씨 과수원에는 10여그루의 사과나무가 수확기를 앞둔 붉은 홍로를 주렁주렁 매단 채 모두 쓰러져 복구할 엄두조차 못낼 정도로 폐농 상태였다.

인근 2천여평의 최성기(45)씨 과수원도 전체 500여 그루 중 50여그루가 뿌리째 뽑혀 쓰러졌으며 과수원 바닥은 강물에 휩쓸려 내려온 뻘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또 고지대에 위치한 과수원들에도 태풍의 심술은 지나치지 않았다.

전중열(54.길안면 송사1리)씨의 1만여평 과수원 바닥은 미처 익지 않은 푸른 사과들로 뒤덮혀 있었다.

낙과율도 줄잡아 40%에 이를 것으로 보였다.

13일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 김원기(63)씨의 고추밭에는 붉게 타들어간 고추 대궁들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찌감치 역병으로 상품의 고추 수확을 꿈도 꾸지 않았다는 김씨는 태풍으로 불어난 계곡물이 밭을 통째로 휩쓸고 지나면서 그나마 달려있던 고추마져 앗아가 버렸다고 한숨지었다.

◆경주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 육상양식장 (주)강림수산(대표 박주흠)의 경우 양식장 지붕이 강풍으로 날아가고 벽체가 무너지면서 정전돼 넙치 4천여마리가 폐사하는 등 2억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자 재기 의욕조차 상실한채 허탈해하고 있다.

이 양식장에는 현재 넙치 성어 1만마리와 치어 3만마리가 자라고 있으나 이번 태풍이 고기들의 생육에 지장을 줘 강림수산측은 고기를 살리기 위해 전량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박춘흠(43) 이사는 "태풍으로 양식장이 폐허가 되는 바람에 기르는 고기를 팔고 전업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복구비가 엄청나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태풍에 배.사과 피해가 가장 많은 경주시 서면지역 주민들은 정전사태에다 13개 마을 3천여가구가 수도물도 나오지 않아 식수고통을 겪고 있다.

또 산내.천북면 일부지역은 14일 오전까지 전기공급이 안되고 있는 상태였다.

◆영천

보현산천문대가 있는 영천 보현산 정상부근에서는 산사태가 발생, 화북면 정각리에서 보현산 천문대로 연결되는 도로 9.2km중 7km 구간을 바위와 토석이 뒤덮어 차량통행은 물론, 사람들의 출입도 끊겼다.

보현산천문대에 근무하는 직원 4명은 현재 천문대의 소형 자가발전기를 이용, 일상생활 문제를 비상 해결하고 있으며 임도를 걸어서 외부와 겨우 통행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이은호 행정실장은 "보현산천문대는 12일 밤11시 이후부터 전기와 통신이 두절된 상태"라며 "도로.전기.통신시설의 응급복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700mm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계곡물이 범람하고 하천제방 곳곳이 붕괴돼 보현산 아래 화북면 소재지인 자천 1.2.3리에 13일 새벽부터 주택의 방안까지 물이 차오르는 등 침수피해가 발생, 주민들이 집단 대피했다.

◆문경

초속 23m의 강풍이 불어닥친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 윤광원(69)씨의 과수원에는 사과나무 600여주 중 400여주가 쓰러지고 많은 낙과가 발생하자 윤씨가 "지난해 3천만원의 소득이 올해는 1천만원도 안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마을 김명희(56)씨도 "사과밭 6천평 중 3천평 낙과에다 사과나무가 뽑히는 피해를 입어 지난해 6천만원의 소득이 올해는 2천만원도 안될 것"이라며 실의에 빠졌다.

한편 낙과와 뿌리째 뽑힌 사과나무를 바로세우기 위해 각 농가들은 일손을 구하지 못하자 외지에서 온 자녀들과 친지를 동원해 12일 이른 아침부터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청송

청송지역엔 011과 017 휴대폰이 개통이 되지 않았으며 일부 지역엔 한전의 야간 복구에도 불구하고 14일 오후까지 정전사태가 이어졌다.

안덕면 신성리 군도 15호선 400여m가 유실돼, 안덕면 지소,고와.근곡리 등 156가구 주민 500여명은 3일째 전기.통신.교통이 두절된 채로 바같 세상의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동면 개일리 속칭 진고마을 4가구 주민 25명은 마을 앞 교량 붕괴로 3일째 고립되어 있었다.

특히 청송.안덕 상수도 물이 수돗꼭지에서 흙탕물이 나와 일부 주민들은 인근 슈퍼에서 식수를 사먹고 있다.

◆영양

13일 오후 1시쯤 영양군 석보면 옥계리 콩밭에서 만난 박봉순(79) 할머니는 연신 "올해는 콩 6말쯤은 거둘 수 있었는데 모두 망쳐 버렸다"며 장탄식을 했다.

박 할머니는 뜨거운 대낮인데도 우의를 입은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갈과 폐비닐로 뒤덮혀 버린 여물다 만 콩들을 만지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월면 섬촌리 오도성(52)씨는 집이 완전히 물에 잠기는 바람에 그동안 말려뒀던 고추 800근이 모두 흙범벅이돼 온 식구가 매달려 이를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석보면 방전리 임종원(56)씨는 "마을앞 하천 제방복구가 최근에야 끝났는데 또다시 제방이 터지면서 수박작목반의 비닐하우스 20여동이 몽땅 지난해 처럼 망가져 앞으로 살아 갈길이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이 때문에 농협 부채상환과 자녀교육 걱정 등 앞으로 살아갈길이 막막해진 일부 농민들은 홧김에 술을 마시고는 면사무소 등을 찾아 당국을 원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영양.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군위

군위군 부계면 동산1.2리와 남산리 일대의 수해현장은 마치 폭격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골짜기 곳곳에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수십년 됨직한 아름드리 나무들과 집채만한 바위덩이들이 하천과 도로에 나뒹굴었고 준설공사를 벌인지 6개월도 안 된 하천은 토사로 가득차 흔적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과수원 한복판은 하천으로 변해 두동강 났고, 수확을 앞둔 2천500여평 사과밭은 바위덩이와 토사로 뒤범벅이 됐다.

부계면 일대에만 이런 곳이 5∼6군데가 넘는다.

홍태식(67)씨는 "2천500평 과수원 한복판으로 홍수가 지나가면서 800여평이 유실됐고 1천200여주의 사과나무 가운데 절반이상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사회2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