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변화의 두려움을 넘어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가 크게 돋보였던 대회였고, 특히 남북 화합의 새 장을 열었던 의미 있는 축전이었다.

유니버시아드 사상 최대의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번 대구 대회는 그야말로 '하나 되는 꿈' 그 자체였다.

174개국의 젊은이들이 정치.사상.인종.종교의 장벽을 넘어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기량을 겨루었고, 한편으로 그 한가운데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남북한이 서로를 응원하였고, 근래 온갖 불운과 시련을 겪었던 대구 시민들은 수만명이 참여해 자원봉사자와 서포터스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셰익스피어나 괴테, 톨스토이나 헤밍웨이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이런 감동적인 작품을 써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그 '감동'을 우리의 미래로 접목시키는 일이 남았다.

과거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세계사의 중심으로 도약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 대구 시민들은 2003 대구 U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역량을 토대로 크게 한번 비상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그러나 염려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구의 경제, 대구의 문화, 대구의 정치, 대구의 교육이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되려면 이번 U대회를 기점으로 결집된 '하나 되는 꿈'을 전 시민들이 몸으로 실천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행여나 '잔치는 끝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안일한 소시민의식이 재연된다면 천재일우의 이 기회는 허무하게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디 대구 사람은 유달리 지역애(地域愛, geopphilia)가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타지에 나간 사람들 중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대구라고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만큼 대구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문화와 교육의 도시로 호평을 받았고, 인재의 보고(寶庫)로 인정받았고, 드러내지 않는 부호들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역경제는 불황의 바닥을 맴돌고 있다고 하고, 문화와 교육 역시 후순위로 처져 있다.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근자에 와서 타지역 사람들이 이주하기 가장 꺼리는 지역, 타지인이 살면서 가장 소외감을 많이 느끼는 지역이 대구라는 사실이다.

일종의 지역혐오(geophobia)가 가장 심한 곳이 대구라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대구 시민들이 특권적이고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 최근대사의 왜곡된 정치적 환경이 낳은 부정적인 부산물일 것이다.

경제든 문화든 정치든 교육이든, 모든 것들이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요체는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경제가 살고, 사람이 바뀌어야 정치도 제 길을 찾는다.

바꾼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대구를 버리고, 영남을 버릴 때 과거의 대구를 다시 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제 과감히 그것들을 버릴 때가 온 것이다.

'자기를 버리는 것' 즉 자기혁신의 관건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이다

두려움은 그것이 무엇인가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나를 지배한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두려움은 그 자체로 아무런 힘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 '변화의 길'로 나설 때 비로소 입증된다.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계시적인 의미를 선사한 축제였다.

북한 선수와 응원단을 둘러싼 우여곡절과 그것을 넓은 아량으로 감싸안은 대구 시민들의 진정한 속마음은 그 중에서도 백미였다.

'따뜻한 대구, 열린 시민의식'으로 거듭날 수 있는 용기가 진정으로 요구되는 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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