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람개비-목소리와 주먹이 앞서는 사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야 그나마 대접을 받을 수 있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대접도 안 해 준다는 이야깁니다.

맞는 말입니다.

또 "목소리 큰 X이 이긴다"는 이야기도 자주 합니다.

차량 접촉 사고가 났을 때를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흔히들 "일단 큰 소리를 치고 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또 상대방이 여자일 경우에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약자를 만나면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단순무식한 '힘의 논리'입니다.

실제로 어디를 가더라도 목소리가 크면 조금은 더 먹혀들어 갑니다.

또 목소리 큰 사람을 만나면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목소리는 일단 크고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별 거부감 없이 들립니다.

또 목소리만 커서도 안됩니다.

주먹도 세야 합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힘이 있으면 법도 뒷전으로 밀려나는 광경이 비일비재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정말 그런 것만 같습니다.

무감각해집니다.

정오(正誤)의 판단도 흐려집니다

큰 목소리와 센 주먹의 '진리'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만고 불변의 진리"라고 거품을 뭅니다.

또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닌 듯 합니다.

호사가들은 또 "우리나라에는 헌법 위에 집단의 논리가 지배하는 '떼'법이 있고 그 위에 무소불위의 '국민정서법'이 있다"고들 합니다.

사방에서 보고 듣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가정이나 학교의 교육은 무의미합니다.

목소리도 크고 주먹도 세야한다는 '산' 교육의 현장은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서는 사생결단으로 덤벼드는 사태가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그게 집단을 이루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섭니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아무 일도 안 됩니다

국가적인 사업들도 이런 상황 앞에서는 한발짝도 진척을 이루지 못합니다.

국민 세금은 줄줄 새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책이 없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법도, 이성도, 논리도 모두 무의미한 것입니다.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거나 심지어 '같이 죽자'는 식의 극단만 존재합니다.

양보와 조정 그리고 타협이란 없습니다.

법도 공권력도 무용지물입니다.

나랏님도 소용없습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이런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조만간 그런 능력이 생겨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또 사회구성원들은 양보와 인내의 미덕을 기르기보다는 목소리와 힘을 기르는데 열중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앞에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낼 일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입니다.

참으로 답답하기만 한 2003년의 가을 하늘입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