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惡世' 자성론

부처님은 일찍이 악세(惡世)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섯 가지 혼탁(五濁)을 든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악세는 시대의 혼탁을 말하는 '겁탁(劫濁)'과 수명이 짧아지는 혼탁을 일컫는 '명탁(命濁)'의 세계를 가리킨다고 했다.

겁탁의 시대에는 대형 인재(人災)가 많이 발생하고 가공할 신종 병이 유행하며, 인간은 본래 8만살까지 살 수 있으나 명탁으로 단명을 부른다는 논리다.

겁탁은 쉽게 이해되지만, 명탁에 대해서는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져 고령화 사회로 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의 혼탁, 불안.불만, 인성(人性)의 혼탁 등 다른 3탁이 원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악세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얼마 전만도 태풍 '매미'가 엄청난 재난을 가져다줬지만 개인적으로 심란하고, 사회적으로는 불안하며, 정치적으로도 혼란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해법들이 구구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우선 오늘 신문지상에 보도된 몇몇 목소리들만으로도 자성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외교관 출신 이동진 시인은 역대 대통령들을 겨냥해 독설과 비판으로 일관한 풍자시집 '개나라의 개나으리들'을 내놓았다.

70~90년대 대통령들의 부패와 무능을 집중적으로 꼬집고, 현직 대통령과 지금 진행 중인 정책들에 대한 질타도 서슴지 않고 있다.

'개혁 행진곡'에선 '기성세대 타도하고 새 나라를 건설하자/이 밤이 새기 전에 몽땅 몰아내자'라는 대목도 나와 있다.

▲한편 원로 사회학자 송복 교수는 한 특강에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5년은 민주화나 개혁의 충성 여부에 따라 지위를 어지럽힌 '지위 교란' 시대였다면 요즘에는 그 시절보다 훨씬 심각한 '지위 반란' 상태"라고 정의했다.

검증도 안 된 젊은 세대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 검증된 인사들을 내쫓는 분위기가 팽배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는 그는 경험이나 능력도 없는 '단순한 새 사람'을 '신선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포퓰리즘까지 겹쳐졌다고 비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낮은 목소리지만 류시화 시인이 '욕망의 길이 아닌 마음과 혼이 담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인디언들 특유의 깨달음의 세계'를 담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을 펴낸 것도 요즘 세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지위 반란'은 반드시 '진압'돼야 한다는 송복 교수의 강력한 비판이나 '얻어맞을 각오로 냈다'는 이동진 시인의 신랄한 정치풍자 시들에,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일깨움을 주는 류시화 시인의 메시지에도 두루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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