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송 주산지

2003 광주국제영화제(8월22~31일) 개막작으로 지난 19일 개봉된 한국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감독 김기덕)의 촬영 무대인 주산지(注山池). 공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청송의 진산 주왕산 남쪽에 자리한 작은 저수지다.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산골 논밭은 태풍 '매미'가 남기고 간 생채기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던 지난 19일 주산지를 찾았다.

태풍 피해가 없었다면 가벼웠을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주산지가 위치한 부동면은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청송군 공무원들에게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워낙 오지여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부동면사무소 근무를 기피했다.

산불에 대한 문책이 엄했던 시절, 담당 구역에서 불이 나면 청송군 공무원들은 어김없이 부동면사무소로 발령 받았다.

지금은 도로가 발달돼 유배지란 개념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면사무소 소재지에 변변한 식당 하나 없을 정도의 산골마을이다.

---영화 촬영장으로 각광

주왕산국립공원구역 안에 있는 주산지는 부동면사무소 소재지에서도 차로 5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저수지 바로 옆까지 차가 들어가지만 비포장도로도 200m 정도 달려야 된다.

빨리 걸으면 한바퀴 돌아보는 데 30분이면 족한 자그마한 저수지가 한 동자승의 삶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주무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수지 제방에 올라서면 금방 알 수 있다.

저수지는 산자락과 바짝 붙어 있다.

계곡 안쪽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계속 불어온다.

저수지 안쪽 물 가운데서 가지를 벌린 왕버들은 신비감을 준다.

산 그림자가 워낙 짙다보니 음산한 기운마저 든다.

제방 정면 산봉우리에 있다는 별바위를 가린 운무가 야속하기만 하다.

저수지 수문 쪽에 부유물이 유난히 많고 물은 연한 황토색을 띠고 있다.

최근 내린 폭우 때문이리라. 바위 위에 서 있는 조그마한 비석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저수지 축조에 공이 큰 월성이씨 진표공(震杓公)의 공덕비다.

뒷면에는 '한일자로 가로막아 물을 저장하니/ 은혜가 많은 농민에게 흐르도다/ 천추에 잊지 못할 것인데/ 오직 한 조각 비석만 남았구나'라는 내용의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다.

---조선 경종 원년대 축조

주산지를 신비롭게 하는 왕버들은 산책로를 따라 조금 들어가야 잘 보인다.

30여그루가 물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수지보다 연배가 높은 것도 있다.

저수지가 조선 경종 원년(1771년)에 준공됐으니 200살이 훨씬 넘은 셈이다.

모양은 제각각이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한 굵은 가지를 여러 개 벌린 것도 있고 잔가지는 거의 없이 위로 솟기만 한 것도 있다.

물 속에 있다보니 왕버들 생김새가 수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변하는 것은 나무 모양새만이 아니다.

물에 비치는 나무 그림자 형상도 태양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

오랜 세월 풍상과 싸우느라 힘이 다해 물의 부력에 의지해 가로로 눕다시피한 '맨몸'의 왕버들은 먹잇감을 노리고 머리만 내민 악어 형상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못 가운데에 세워졌던 세트장은 철거되고 없었다.

철거를 싸고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환경오염을 우려한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인근 주민들의 요청으로 철거했다고 한다.

---200m 오솔길'숲터널'

숲이 터널을 이룬 폭 3m, 길이 200m의 오솔길은 전망대 부근에서 끝난다.

입산금지 표지판이 가로막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전망대는 나무로 운치있게 만들어졌다.

난간에 기대 서서 물 속에서 하나가 된 산과 나무를 보노라면 어느덧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냥 돌아서 나오기 너무 아쉽다.

발길은 저절로 출입금지 표지판 안쪽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갈 수가 없다.

저지하는 이는 없지만 숲이 너무 우거져 겁이 난다.

한껏 용기를 내 저수지 가장자리에서 서성인다.

숨어서 사랑을 속삭이던 물오리 두 마리가 못 가운데로 뺑소니를 친다.

예상치 못한 물오리의 움직임에 침입자의 머리카락은 주뼛 설 수밖에 없다.

물오리를 놀라게 한 죄값이다.

곧 가을 옷을 입게 될 수목들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플라스틱 재질의 간이화장실을 봐야 하는 것도 넘어서는 안될 담장을 넘고 받은 처벌 중의 하나다.

◇여행정보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의성IC에서 내려 5번 국도를 타고 안동 방향으로 달리다 의성으로 진입한다.

의성군 의성읍 북원네거리에서 청송.안동 방면으로 직진해 점곡.옥산면을 지나면 길안면네거리. 이곳서 청송 주왕산 이정표를 보고 달리다 주왕산삼거리에서 부동면 방면으로 직진 후 면사무소 소재지 지나 나오는 이전네거리 도착하면 주산지 이정표가 보인다.

대구에서 차로 2시간 정도 소요.

▶주변 가볼 만한 곳:주산지 바로 옆에 내주왕이라 불리는 절골이 있다.

계곡 길이 10㎞로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관이 빼어나다.

매표소에서 가메봉을 거쳐 주왕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대전사 쪽으로 내려오는 데는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또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높이 63m의 인공폭포가 있는 얼음골(부동면 내룡리)이 주산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으며, 청송민속박물관(청송읍 송생리), 송소고택(파천면 덕천리) 등이 대구서 주산지 가는 길에 있다.

▶주산지 바로 인근에는 식당이 없어 주왕산 입구까지 다시 내려와야 한다.

주왕산삼거리 부근부터 주왕산국립공원 입구까지 산채비빔밥(5천원)과 닭백숙(1인분 7천~8천원) 등을 하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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