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계양동에서 '온천골 가마솥국밥'을 운영하는 박수근(47)씨는 4천원짜리 국밥을 팔아 한달 평균 2천만원의 순수익을 남긴다.
월 평균 매출 6천여만원. 1년 매출은 소규모 제조업체 수준이다.
1999년 11월 개업 당시 아내와 친척 등을 동원한 '가족 가게'로 시작했지만 약 4년만에 종업원만 10명에 이르는 '요식업체'로 성장했다.
대구 북구 등지에 '온천골' 상표를 단 3곳의 프랜차이즈점도 생겨났다.
"개업 당시 하루 200그릇 정도 팔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업 첫날 800명이 넘는 손님이 쏟아졌어요".
박씨는 '아이템 선정'이 창업 성공여부를 좌우한다고 했다.
소비자가 필요로하는 아이템을 때에 맞춰 가게문을 열어야한다는 것. 그는 창업 준비 당시 소고기 국밥이 '뜰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불경기에 저렴한 음식이 필요하다는 점, '패스트푸드 홍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옛 것'을 그리워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한우고기로 가마솥에 장작을 때 국을 끓이고, 놋그릇에 담아낸다.
손님들이 이런 옛날식 조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가게구조를 개방했다
하지만 개업전 그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조리법이었다.
박씨 자신이 소고기국 끓이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동네 잔치때마다 불려다니며 소고기 국밥을 끓여주던 할머니 한 분이 고향에 살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전국을 찾아다닌 끝에 마산 친지집에 머물던 할머니를 찾아냈어요. 그 때 '사람의 성공은 운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국밥집 개업전까지만 해도 그는 억세게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1995년까지 경북도청에서 7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사표를 낸 뒤 '이혼의 위기'와 '자살 결심'까지 하는 비참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공무원을 하던 도중 채소 수경재배를 알게됐습니다.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조카에게 이 사업을 권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영업이 안됐습니다.
당시 진급도 잘 안되는데다 조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어 '내가 해보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써버렸습니다".
1995년말, 퇴직금에다 2억원이 넘는 빚까지 내 경산에 숯불갈비집을 냈다.
최고급 한우에다 수경재배를 한 채소를 얹어서 팔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150평짜리 대형 가게에다 종업원만 28명이었습니다.
"우물안 공무원이었던 제가 장사도 모르면서 기고만장했습니다.
결국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이어졌고 이것도 모른채 가게를 이어오다 결국 1997년 외환위기로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은행 금리가 오르면서 2억원이던 빚이 불과 몇 달만에 배로 불었습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공무원인 아내의 봉급에 압류가 걸렸다.
자살하려고 산에도 여러번 올랐다.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어리석은 짓을 그만뒀습니다.
재기를 하자고 생각했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아내를 설득, 아내의 퇴직금으로 국밥집을 시작했습니다".
4억원에 이르던 빚도 이젠 거의 다 갚았다.
경매에 넘어가 남의 손에 들어갔던 집도 다시 찾았다.
그러나 박씨는 수성구 상동에 있는 집에는 주말이나 휴일에 이따금씩 들른다.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영업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는 가게 부근 원룸에서 혼자 산다.
이젠 국 끓이는 기술도 익혀 직접 주방을 지휘한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대구 매천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장도 손수 본다.
그의 영업신조는 '주인이 모든 것을 직접 해야한다'는 것.
"가게에서 가장 고된 사람은 주인이어야합니다.
제가 실패했던 이유는 주인이 방관자였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려면 고통도 감수해야하죠. 그리고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덩치를 줄여 문을 열어야합니다.
작은 가게에서 1천, 2천원짜리를 팔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053)814-0010.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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