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표준어 사정 원칙 제1장 총칙 제1항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 중인 행정수도 이전이 실현된다면 표준어 규정도 서울말이 아닌 충청말로 바뀌어야 할 것인가?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막상 수도 이전이 가시화될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현안이다.
지금까지 표준어의 기반을 이루는 수도지역, 즉 서울말이라는 제약을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신 한민족 방언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를 표준어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중심주의의 표준어 규정=권위적 사회의 유산이랄 수 있는 현행 표준어 규정은 서울 중심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등 크고 작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표준어 등 어문정책의 틀을 수도 중심에서 지방지역 중심으로 그 축을 이동해야 한다"며 "지역 언어를 존중하는 공통어 정책은 지역과 지역의 갈등을 넘어 문화적 통일체성을 확보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지역 언어의 존중은 사회 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민중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수도지역 언어를 표준어로 삼는 나라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우리의 표준어 규정을 재고케 하는 요인이다.
우리가 표준어 규정을 따랐던 일본은 1949년 그 규정을 바꿨다.
'도쿄의 야마노테선(山水線) 안에 거주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언어'에서 민중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언을 가려 모아서 사용하는 공통어(Common Language)로 방향을 선회했다.
영.미권에서도 '소통발화(RP:Received Pronounce)'를 어문정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방언을 '죽이는' 표준어 규정=서울말(정확하게는 '서울 방언')이란 규정이 70년동안 표준어 규정으로 자리한 결과 우리 말과 글은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우선 서울말이란 표준어의 지역적 제약 때문에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방언들이 급격하게 소멸되는 '불행'을 가져오고 말았다.
순박하고 인정스러운 사람들의 삶을 충청도 사투리로 녹여낸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의 경우 토속적인 사투리들이 이 소설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지만 우리가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이 소설에 나오는 어휘들을 풀이한 책을 따로 봐야 한다.
한 문학평론가는 "'곳곳의 낯선 말들'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목에서인가 나는 소설을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비단 이 것뿐만 아니다.
지역 민중들의 공동체 삶 속에 살아있는 언어들이 안타깝게도 소멸하고 있다.
길쌈하던 아낙네들이 상용하던 말씨인 베틀의 부품명이나, 실을 짜는데 관련되는 용어와 같은 농촌 어휘에서부터 어촌.탄광촌의 말, 민요나 판소리에 나오는 말들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잊혀져가고 있다.
함경도 방언에는 매의 종류를 나타내는 말이 7가지가 넘지만 우리는 표준어인 '매'만 익숙할 뿐이다.
이 교수는 "서울에 국한된 우리의 표준어 규정 때문에 우리의 국어사전 분량은 한 권에 그치고 있는 반면 방언까지 아우르는 공통어 정책을 채택한 일본은 국어사전 분량이 30권이 넘는다"며 "편협한 표준어 규정 탓에 우리는 아름답고 풍부한 우리 말을 사장시킨 채 살도 피도 없는 우리 말의 뼈다귀만 붙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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