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군사도시 영천(1)-시민들 "軍 도시발전 발목" 반감

육군 제3사관학교(이하 3사)가 있는 영천시 고경면 창상.창하리 주민들은 심기가 불편하다.

3사가 교내에 조성키로 한 9홀 규모의 골프장 때문. 주민들이 잇따라 집회를 열면서 골프장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3사측은 조성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감정은 쌓여가고 갈등은 깊어진다.

이같은 주민과 군의 갈등은 예전엔 상상도 못했다.

'돈 되는 땅'은 군부대가 모조리 차지하고 앉은 '군사도시 영천'에선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바뀌고 있다.

군 비난 발언이 공공연히 터져나온다.

영천의 이미지가 군사도시로 굳혀지는 데 대한 거부감도 강하다.

나아가 지난 수십년간 군 때문에 희생한 만큼 이제는 군이 영천 발전을 위해 희생할 차례라는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현재 영천에는 육군 제3사관학교, 1117 야전공병단, 2탄약창, 3보급창, 21항공단, 50사단소속 2대대 및 122연대 등 7개 부대가 4개동, 4개면에 걸쳐 주둔하고 있다.

대표격인 군부대는 3사. 고경면 대구~포항간 국도변에 있고, 지휘관이 장성(교장이 육군 소장)인 유일한 곳이다

지난 1968년 창설된 3사에는 현재 400여명의 간부가 있고, 이들 대부분이 영천시내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주한다.

영천에 사는 3사 소속 군인가족은 1천500명이 넘는다.

인근 단포.동부 초교생 상당수가 군인 자녀이고, 가족들은 부식과 생필품 대부분을 영천 시내에서 구입한다.

영천시에 따르면 2003년 10월 현재 시인구에 포함된 영외거주 군인과 가족은 1천900여명에 이른다.

도심권인 완산동.금노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2탄약창과 3보급창을 비롯해 21항공단, 야전공병단 등 연대급인 군부대의 지휘관은 대령이며, 50사단 소속 2대대는 지휘관이 중령이다.

그렇다면 영천은 언제부터 군사도시가 됐을까? 영천은 대구~포항~경주~안동~청송을 연결하는 사통오달의 교통 및 군사작전 요충지이다.

권영락 영천재향군인회장은 "한국전쟁 포로수용소가 있었고, 낙동강방어선 전투 때 육군 8사단이 북한군 15사단을 괴멸시킨 유명한 전승지"라고 말했다.

국군 탄약공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 2탄약창 건설과 관련, 지역에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지난 1956년 2탄약창내 지하탄약고를 건설하면서 미군은 습기 피해를 우려해 국내에서 비가 가장 적게 내리고 배수도 잘 되는 지역을 샅샅이 조사한 끝에 영천의 2탄약창을 건설했다는 것.

한국전쟁을 경험한 지역인사들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돼 헌병학교, 부관학교, 경리학교, 정보학교 등 4개 학교가 들어섰고, 완산동 옛 공병대대는 주민 땅을 징발해 건설했다"며 "공병대와 4개 학교 주둔, 1968년 3사 개교 등이 오늘날 영천을 군사도시로 만든 계기"라고 말했다.

10월 현재 군사시설 및 군사시설보호구역 면적은 876만평(군사시설 388만평, 군사시설보호 488만평)에 이른다.

군사보호구역 488만평 중 사유지도 207만여평이나 된다

특히 과거 도심 외곽지였던 부대땅이 도시 확장에 따라 도심으로 편입됐다.

수십년간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던 시민과 군의 관계가 불편해진 이유는 바로 도시개발 저해다.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지주들이 항의하고, 주민들과도 잦은 분쟁에 휩싸이고 있다.

영천 2탄약창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땅 5천여평이 포함돼 있는 곽왈섭(50.영천시 망정동)씨는 요즘도 군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분을 삭이지 못한다.

지난 1994년 군사보호구역 일부 해제조치 때 자기 땅도 해제될 것으로 보고, 자동차운전학원을 세우기 위해 조건부 설립승인까지 받았지만 결국 해제대상에서 제외됐다.

2년간의 싸움 끝에 1996년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하거나 자동차운전학원 설립허가를 위한 행정기관의 요청시 군이 동의하라'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시정권고 명령을 받아냈다.

그러나 싸움을 벌이는 동안 다른 곳에 운전학원이 들어섰다.

곽씨는 운전학원 대신 약초단지집하장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지난해 군에 설립동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군은 태도를 돌변했다.

"당시 담당자가 현재 근무하지 않아 그런 내용(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또는 시설의 설립시 동의)은 모른다"며 "동의할 수 없으니 국방부로부터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승인을 받아오라"고 외면한 것.

곽씨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민고충처리위의 권고조차 모르겠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국민재산권을 침해하는 군에 대해 어떻게 좋은 인상을 갖겠느냐"며 "영천의 수많은 주민들이 이런 불편을 감수한 채 수십년간 살아오고 있다"고 목청을 돋웠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