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노무현님의 가을

팔공산 단풍길 순환도로에 제법 가을이 익었다.

백안로를 돌아가는 은행나무 거리에도 가을 햇살속에 노랗게 익어가는 은행잎들이 수채화처럼 화사롭다.

과수원길 사과는 이마가 붉게 익고 햇대추는 볼이 발갛다.

코스모스를 쓰다듬다 온 소슬바람 위로 낮술에 취한듯한 고추잠자리들의 군무(群舞)가 한가롭다

그러나 이 화사한 가을에도 사람들은 왠지 조금씩은 우울해 한다.

춘원 이광수도 가을은 슬프다고 했다.

"낙엽이니 가을 바람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비애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귀뚜라미 울음은 세월의 덧없음과 생명과 영화(榮華)도 믿을 수 없는것임을 알리는것 같다"고 그의 병창어(病窓語)에 쓰고 있다.

'가을을 탄다'는 건 감성이 예민한 자의 우울이기도 하지만 가슴이 메마르지 않은 자의 낭만이기도 하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가을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생각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계절이라 말한다.

우울상태가 가을을 타면서 과장되게 나타나고 현실을 벗어나려는 충동과 현실도피적 행동을 유발한다고도 했다.

계획된 일이 풀리지 않고 현실이 마음에 안들때 그 현실을 도피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더 강하게 표출되는 계절이 가을이라는 것이다.

또한 현실이 괴롭고 두려움과 충격에서 벗어나고 싶을때 현실속의 자아가 아닌 또 다른 자아로 빠져드는 해리(解離)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가을을 타는 증세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전쟁이란 두려움과 충격을 벗어나기 위해 전쟁중인 군인이 자신이 군인임(자아)을 잊고 프랑스 농부로(또 다른 자아) 인격해리를 일으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같은 경우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을을 타는 것일까? 느닷없는 재신임 승부수를 불쑥 던지고 나왔기에 가져보는 의문이다.

최근의 그분 심기를 정신의학 전문가의 설명에 비춰본다면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한 두려움과 측근비리 의혹의 충격, 바닥을 치고 있는 지지율에 대한 분노, 우울 등이 가을이 되면서 소위 블루(Blue)한 심리상태로 확대됐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이란 자아를 벗어나 신임이 불확실하고 국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레임덕 실권자인양(또 다른 자아) 해리현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어느 작가는 가을철의 '우울'을 타인에 대한 장기간의 계속적인 분노, 비난 같은 것 들이 지속되는 심리상태라고 풀이했다.

동정과 지지를 얻고 싶긴 한데 자기의 잘못 때문에 그 동정과 지지를 거부당하고 있는 듯한 실망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울이라는 것이다.

그 작가의 논리에 '가을 타는 노 대통령'의 심기를 맞춰본다면 본인은 뭔가 잘해 보려고 하는데 동정과 지지 대신 국회는 장관해임이나 시키고 언론은 계속 발목 잡는다고 실망하며 '분노'와 '비난'이 속을 끓여온 우울의 상태가 아닐까.

실제 그는 재신임 이유로서 측근 도덕성 등을 거론하다 하루만에 장관 해임과 언론의 비협조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재신임 제기 이유로 지목했었다.

그러한 우울하고 서글픈 분노의 감성이 가을이 되면서 불쑥 강하게 표출되고 '못해먹겠다'던 발언과 맞물려 '까짓것 재신임 안해주면 때려치우면 그만 아니냐'는 현실도피적 발언을 한 것이라면 그는 분명 '가을을 타고 있는'것이 된다.

앞으로 재신임 배경의 순수성이나 어떤 방식 어떤 시기에 처리돼야 할거라는 논쟁은 뒤로 미루고 오늘은 가을 얘기만 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의 지도자가 분노와 우울, 슬픔에 치우친 가을 대신 맑은 영혼만이 빛나는 낭만적인 가을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느 시인의 가을 시(詩) 한 구절을 소개드린다.

부디 국민들에게 우울과 슬픔, 불안을 전염시키는 가을타기 대신 지도자답게 낭만과 희망이 있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가을이 되기를 바라면서….

설악산 한계령을 넘다가

입을 벌리고 단풍을 본다/

바람은 어떤 기막힌 영혼을 품었기에

푸른 산 허리에 닿아

저렇게 흐드러지게 꿈이 풀리고/

줄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물에서는 은빛 춤이 되는가/

나는 도대체 얼만큼 맑고 고운 영혼을 품어야

그대(국민) 가슴에 만나 단풍처럼 피어날까/

언제쯤이나 언제쯤이나 나의 아픔은

그대 마음줄을 울리는 소리가 되고

저렇게 기막힌 영혼이 될 수 있을까.

이제 인기나 여론조사 수치에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가을시처럼 맑게 비워 보시라. 시를 읽어도 마음속에 네탓의 불만과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면 재신임을 백번 받는다해도 그의 가을은 한낱 슬프고 우울한 가을일 뿐이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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