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잊어버린 주례사

어제도 대혼일(婚日)이었다.

시내 호텔.예식장들은 성시를 이뤘고 축의금 봉투를 서너개씩 넣고 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뛴 하객들도 도토리 줍기 바쁜 가을 다람쥐 만큼이나 숨가쁜 가을휴일을 보냈을것 같다.

이 가을 결혼시즌을 보내며 문득 누구나 한번씩은 들었을 '주례사'를 생각해본다.

과연 부부가 살아오면서 주례사를 다 지키고 주례사대로 살아온 부부가 몇이나 될까.

남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주례사를 흘린 귀로 들을때마다 가끔씩 자신의 결혼식때의 주례님 말씀을 떠올려보면 그런 자책이 더 든다.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제대로 기억해내는 총기있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주례사를 제대로 기억못하는건 그때의 주례사가 새겨듣고 외워둘만한 말씀이 못돼서라거나 뻔한 잔소리 같아서 기억 못하는건 아닐것이다.

틀림없이 체험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가장 경건한 분위기에서 간곡히 들려준 최고의 말씀이었을테니까 꼭 새겨둘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례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아간다.

말씀대로 살기는 고사하고 타일러준 주례사와는 오히려 반대되는 부부 생활을 할때가 더 많다.

연간 40여만쌍의 신혼부부들이 쓰는 결혼비용이 25조원이나 된다는데 그런 천문학적인 '사랑만들기 비용'을 쓰고도 주례사와 거꾸로 가는 삶을 살고있다면 뭔가가 잘못됐다.

그 어떤 멍청한 주례도 혼수비용이나 지참금이 많아야 행복한 결혼이 될것이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결혼비용을 아끼려고 사촌과 형, 셋이서 합동결혼식을 했다는 간디가 부잣집 딸이 아닌 문맹의 처녀를 데려다 글을 가르쳐 가며 훌륭한 배필로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행복은 혼수비용순(順)이 아님을 깨우쳐 준다.

그런 주례사를 듣고서도 신혼내내 혼수가 적으니 많으니 티격대는 못난 부부가 없지 않다.

'너의 어머니와는 바닷가까지만 가더라도 너의 남편과는 거친 바다를 넘어서까지 가라'는 속담을 주례사로 들어놓고도 생활이 고생스러우면 남편을 절반도 안따라가고 돌아서는 이기적 사랑은 없을까.

'바가지 긁는 아내와 대궐같은 집에 사느니 다락방 구석에 혼자사는게 편하다'는 성경 말씀이나 '남자를 밖으로 뛰쳐 나가게 하는 것에 세가지가 있다.

연기, 천장에서 새는 빗물, 그리고 바가지 긁는 아내'라는 비유의 주례사를 듣고도 자신은 바가지만 긁어온 아내는 아니었던가.

'결혼전에는 두눈을 크게 뜨고 보고 결혼후에는 한쪽 눈을 감으라'는 주례사를 함께 듣고도 아내의 결점만 찾아 잔소리하고 애 키우느라 굵어진 허리를 비아냥대지는 않았는지 결혼시즌에 한번쯤 되돌아보자. 이름없는 산새들도 나뭇가지 몇개 걸친 둥지만 있으면 만족하듯 자연의 섭리대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라는 주례사에도 사람들은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 위해 '떴다방' 앞에 줄을 선다.

그리고 이렇게들 말할 것이다.

주례사란 어차피 덕담으로 하는 구두선(口頭禪)이요 교과서에나 나오는 '공자말씀'같은 것일뿐 삶의 현장에서 부닥치는 실제 상황은 그게 아니라고….

주례사 따로 현실 따로의 삶에 대한 변명들이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공된 결혼생활의 진정한 행복지수는 아파트 평수같은 실제생활의 계수가 아니라 구두선 같은 주례사의 실천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

11억이면 대통령의 눈앞도 캄캄하게 만들 수 있는 추한 세상을 바라보면 그런 삶의 법칙은 한결 더 맞아 떨어진다.

따라서 주례사를 기억하고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며 출발한다면 그 결혼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결혼이다.

인생의 끝자락까지 주례사를 기억하며 사랑으로 산다면 더더욱 성공된 인생이다.

그리스도와 공자와 인도의 마하바라다 서사시(詩)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결혼과 사랑에 대해 남긴 말씀 중 우연처럼 똑같이 표현까지도 일치된 말씀 하나가 있다.

'네가 남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그대가 바라지 않고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느님과 동서고금 최고의 성자 성현들이 남긴 최고의 주례사가 아니겠는가.

이 가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들과 주례사를 잊고 사는 구혼 부부들에게 가정안의 축복을 기원드리면서 '주례사를 새기며 살자'는 책상머리 주례사를 띄워드린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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