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가 있어야 기름을 짜지. 참깨가 없어 주문을 못맞춰요. 이래 가지고 목에 풀칠이나 할는지…"
뛰어난 맛과 품질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예천 참기름' 제조를 체험하기 위해 지보농협 참기름 가공공장에 들어서자, 푸념부터 들렸다.
이른 아침부터 전국 백화점과 농협판매장에서 주문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
그러나 공장장과 인부들은 한숨부터 쉬었다.
공장장 김장환(36)씨는 "재고 물량은 이미 추석전에 다 팔았다"면서 "참깨가 없어 참기름을 만들지 못한다고 주문을 거절해도 믿지않는다"고 말한다.
이상기(35) 매일신문 예천지국장과 함께 참기름 공장에 들어서자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낯가림을 하는 지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체험을 위해 참기름 공장을 찾았지만 일감이 없단다.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내린 잦은 비로 참깨 농사가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참깨 생산량의 20~30%선에도 못 미치자 참깨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원료수급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위생이 최우선
지보농협 참기름 가공공장은 50평 크기로 작업장 인부는 일용직을 포함해 고작 5명이다.
여기에 1일체험을 위해 등장한 기자 일행 2명을 합쳐 모두 7명이 이날 참기름 제조에 참여했다.
공장장은 참기름 짜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고참 아주머니는 "일해 본 사람 같지 않다.
일 하려면 빨리 준비하라"고 채근하며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곧장 공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공장장이 불러 세운다.
"참기름은 가장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 입니다.
사무실로 오세요". 사무실에서 건네받은 위생복과 모자가 기자의 몸피를 감당하지 못한다.
몸을 위생복에 맞추려니 숨쉬기가 곤란하다.
참깨 대신 기자가 먼저 기름짜일까 걱정이다.
#기자양반 똑바로 해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위생복 차림의 기자를 쳐다보는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시큰둥하다.
하지만 아랑곳할 시간이 없다.
먼저 참기름을 짜기 위해 질 좋은 참깨를 골라 세척기로 옮겼다.
세척기까지 거리는 20m. 30kg 짜리 참깨 한 포대를 수레에 싣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 씨름하자 공장장이 달려와 거든다.
씻고, 말리고, 볶고, 짜는 과정을 거쳐 참깨가 참기름으로 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30여분.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참깨를 볶는 통돌이 가마에 불을 지피자 냉기로 가득 찼던 공장 안은 순식간에 온기가 감돈다.
참깨에서 돌을 고르고 씻은 다음 볶고 짜는 아주머니들과 기계가 고장나면 달려오는 공장장의 일손이 분주해졌다.
그러나 기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참깨 목욕 시키기에 동참했으나 채받이를 제대로 못해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
공장 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쏟아져 나오는 참깨를 바닥에 쏟아버린 것이다.
"기자양반, 채를 똑바로 갖다대고 받아야지. 요즘 참깨 값이 얼마나 비싼데 아까운 참깨를 쏟아". 어설픈 손놀림을 보다 못한 김옥이(58.예천군 지보면 마전1리)씨가 채를 가로챈 뒤 "이렇게 하는거야. 똑 바로 봐요. 채를 돌리면서 골고루 받아야 안 흘리고 많이 담을 수 있어"라며 한수 가르쳐 준다.
공장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려는데 공장장이 "창고에 가서 참깨 싣고 오라"며 성화를 부린다.
부랴부랴 손수레를 끌고 창고로 갔다.
참깨로 가득 차야 할 창고는 빈 자리가 많다.
참깨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한숨이 느껴졌다.
# 황적색 참기름 탄생
세척기를 통과한 참깨는 건조대에서 5분 가량 머물다 곧바로 대형 회전식 가마로 직행한다.
여기서 150℃~ 240 ℃의 강한 불에 20~25분간 골고루 볶는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참깨를 볶으면서 나오는 연기가 옷 사이로 배어들고 땀 냄새와 뒤섞여 묘한 냄새를 풍긴다.
볶은 참깨가 가마에서 나올 때쯤이면 숙달된 아주머니들의 손길은 바빠진다.
갓 볶은 참깨를 바가지로 퍼서 그을음을 제거한 뒤 유압기 통에 옮겨 담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눈부시다.
언제 다쳤는지 모르나 뜨거운 가마에 스친 손가락이 조금씩 아려왔다.
"기자양반, 거기 앉아서 참기름 찌꺼기나 걸러". 드디어 유압기 사이로 볶은 참깨가 참기름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유압기 구멍 사이로 투명하고 황적색을 띤 참기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명품 예천 참기름'의 탄생이다
참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쓰레기통에 넣다가 또 혼이 났다.
"참깨는 찌꺼기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모두 '예천 참우' 사료용으로 사용하는데 한 덩이에 만원이나 하는 깻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어떡해요". 고참 김외숙(58)씨가 발끈한다.
깻묵 한 덩이의 무게는 줄잡아 4~5kg이다.
한 포대에 담는 깻묵 덩이가 15개이니 한 포대의 무게는 70kg. 옮기려니 다리가 휘청거리고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이제 남은 일은 집유기에 모아 둔 참기름을 예쁜 병에 담아 상표를 붙이고 뚜껑을 닫는 것 뿐이다.
예천.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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