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지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시험 결과에 낙담한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학교를 마치고도 학원을 여섯 군데나 다녀야 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정말 슬픔 같은 것을 느낄까. 차에 치어죽은 고양이의 사체에서,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도서관에서 취업시험에 골몰하는 청년들과, 허리에 폭탄을 두른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한 뉴스를 보며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받아 넘겨야 할 일일까.

안톤 슈낙의 수필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작가는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동물원 안에 갇혀 있는 한 마리의 범의 모습에서, 누군가 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에, 담벼락에 사랑을 고백한 낙서에서, 달리는 기차에서, 추수가 끝난 텅 빈 논과 밭, 베어 없어져 버린 아카시아 숲, 바이올린의 G현과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나뭇가지 위에 하얀 눈송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눈앞에 작고 사소한 것들을 보며 측은지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몇이나 될까. 갈길 바쁘고 할 일 많아 슬퍼할 겨를은커녕, 괜히 마음 쓰이고, 보기 싫고, 안보고 싶고, 그냥 스쳐지나가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슬퍼할 겨를 없이 살아가는 일상 안에 우리는 사실 얼마나 많은 슬픔을 가지고 살며, 얼마나 많은 슬픔을 느끼고 있는가. 단지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보면 거리에 모든 것들은 '슬픔'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간다는 증거가 아닌가.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딘가 아프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에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무엇이라 말할까. 내 옆에 사람은 무엇이라 대답할까.

김정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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