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난징(南京)에 가면 중산릉(中山陵)을 만날 수 있다.
중심까지 반 시간을 걸어야 하는 이 능의 주인은 쑨원(孫文)이다.
청조를 멸망시키고 국민정부를 세운 쑨원은 중국인으로부터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인물. 그의 묘를 전제군주에 버금갈 만큼 거대하게 조성하고 능이라고 명명한 데에는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인민의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우리나라는 국부로 추앙받는 통치권자를 갖지 못했다.
통치권은 늘 흔들렸고 영욕에 시달렸다.
근대사를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책이 나와 관심을 끈다.
작가이자 소설가인 김광수가 쓴 '역사에 남고 싶은 열망-한국의 통치권자'(현암사 펴냄)가 그것이다
이 책은 KBS 라디오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방송한 '다큐멘터리 한국사' 중 고종, 순종, 김구,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12명의 통치권자와 관련된 대목만 추린 것이다.
다음은 이 책에서 소개된 통치권자의 어록 중 일부이다.
고종 오백년 종묘사직이 짐의 대에 와서 허사가 되도다.
내 죽어 무슨 낯으로 열성조를 뵐꼬?
이승만 미국사람도 못믿고 일본사람도 못 믿습네다.
한인은 단결해야 합네다.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습네다.
장면 미국대사, 문 좀 열어 주시오, 군인들이 오고 있소!
박정희 괜찮아.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순 없어. 구차하게 피하지 마라. 주사위는 던져졌어. 나는 괜찮아.
노태우 나는 홀딱 벗었습니다.
그러나 김씨 여러분, 본인 노씨는 믿습니다
쇠(金)는 화로(盧) 속에 들어오면 녹아버린다는 것을.
김영삼 내 임기중에는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받겠다는 발표를 해서 깜짝 놀랬제?
노무현 대~한민국! 노사모 여러분, 우리가 크게 사고 쳤습니다!
저자는 방송 대본을 최대한 활용하되 책에 맞는 어휘로 다양하게 표현했으며, 비화와 통치권자 주위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한일합방조약 체결 당시 순정효황후 윤씨는 옥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
옥새를 찍어야만 조약의 효력이 발휘하지만 황후 치마 속에 든 것을 가져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황후의 백부인 친일 거두 윤덕영이 황후의 치마를 들추고 옥새를 빼앗았다〈39쪽〉.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의 참사는 기세등등하던 관료들이 정작 위기 앞에서는 보신주의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문세광의 발목을 걸어넘어지게 한 사람은 세무공무원이었다.
단상의 각료들도 가관이었다.
다투어 의자 뒤에 숨었는데 국무총리 정일권은 육영수 여사 뒤에 숨었다〈144쪽〉.
이 책에는 12명의 통치권자 사진을 비롯해 역사와 함께한 옛 건물 사진, 윤봉길이 폭탄을 던진 단상, 만국평화회의, 모스크바 삼상회의 등의 기록 사진 220컷이 실려 있다.
근대 역사의 애환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이 시선을 잡는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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