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두 도둑을 잡았는데 증거가 없다.
경찰은 둘을 다른 취조실에서 심문한다.
두 도둑에게는 세가지 선택이 있다.
자백하기, 공범에게 떠넘기기, 침묵하기. 증거가 없으므로 둘 다 입 다물면 풀려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믿을 수 없다.
난 의리를 지켰는데 옆방놈이 배신하면 나만 죄를 뒤집어 쓴다.
결국 두 도둑은 서로 배신을 하고 함께 감옥으로 간다.
이같은 내용의 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만큼 인간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있을까.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가 무언지 잘 알면서도 서로 믿지 못하기에 최악의 카드를 선택한다는 '죄수의 딜레마'에 우리사회는 지금 단단히 빠져든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는 거대한 뻘밭이 된 듯하다.
상생과 타협은 없고 한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살 수 없는 원수를 대하듯 정치판에서는 정쟁만 난무하며 서로를 막다른 코너로 몰아 세우기 바쁘다.
공익 앞에서 적절히 멈춰설 줄 알고 사회가 합의한 '룰'(법)에 승복하기보다는 '나는 손해볼 수 없다'는 님비 현상과 집단이기주의가 분출하고 있다.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과 국제 정치적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중동 사태도 테러→응징→테러라는 피의 악순환을 부르며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역시 '죄수의 딜레마'다.
1951년 미국 볼티모어의 헨리에타 랙스라는 여성이 자궁암으로 숨졌다.
그러나 그녀의 자궁에서 떼어낸 암세포는 '헬라 세포'(HeLa cell)라는 이름이 붙여진채 전세계 실험실에서 무한 증식하고 있다.
정상 세포는 50회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지만 암세포는 조건만 주어지면 죽지 않고 무한 증식한다.
정상세포는 전체 조직에 쓸모가 없어지면 '자살'을 감행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그러는 법이 없다.
영양분을 다른 세포와 결코 나누지 않으며 자기와 같은 놈만 복제하기에 바쁘다.
불멸에 대한 암세포의 욕심은 그러나 조직 전체(생명체)의 파멸을 부른다.
죽음 없이는 삶이 존재할 수 없고 상생(相生) 없인 공멸 밖에 없음을 자연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개인 이익의 합이 공동체의 이익과 배치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든다.
헬라 세포는 이같은 '저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신뢰를 통한 협력과 상생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김해용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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