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라는 이름은 한국 현대사의 상처다.
"박정희 목따러 왔시오"라는 김신조의 말 한마디에 "김일성의 목을 따자"며 특수부대를 조직한 발상은 아이들 전쟁놀이처럼 우화스런 일이다.
그 비극적 결말은 훨씬 더 광기스럽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실미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오락영화다.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직후인 1968년 4월 정부는 북파공작원 부대인 '684 실미도 부대'를 창설한다.
살인미수로 사형선고를 받은 깡패 인찬(설경구)은 교육대장 재현(안성기)의 제안으로 684부대에 들어온다.
실미도에 들어온 31명의 부대원들도 대부분 인찬과 같은 처지.
혹독한 훈련을 거쳐 최강의 '살인병기'가 된 그들에게 출정명령이 내리지 않는다.
적십자 회담으로 남북에 평화의 기운이 돌자, 정부는 이들의 존재를 없애려고 한다.
전원 몰살 당할 처지가 되자 훈련병들은 기간병들을 죽이고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한다.
'실미도'의 진상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부대원들에 대한 개인적인 신상은 물론이고, 어떻게 부대에 들어오게 된지도 모른다.
발상과 비극적인 결말을 빼고 영화는 모두 픽션이다.
지옥의 외딴섬에서도 튀어나오는 유머, 기간병들과 피어나는 우정, 버스에 피로 이름을 쓰고 죽어간 부대원. 감상적인 관객들은 눈물까지 찍어낸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 비극의 화살을 무책임하며 기회주의적인 국가기관에게 돌린다.
정확히 하면 중앙정보부의 권력자들이다.
그 외딴섬에서 국가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훈련받은 이는 피해자가 되고, 교육대장마저 그들 편에 서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신파조 드라마를 풀어낸다.
역사의 한 사건을 신파조로 그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영화 외적으로는 역사의 재해석을 포기한 것이고, 영화 안으로는 판에 박힌 드라마가 된다는 것이다.
재해석의 여지는 어차피 힘에 부쳐 보인다.
애초의 발상도 그것이 아닌 듯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드라마의 지향점은 캐릭터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래서 '살인병기'로 혹독한 훈련에 초점을 맞추고, 전원몰살이라는 극점을 넣어 안타까운 결말로 치닫는다.
이름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은 더욱 비극적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감상은 극적 긴장을 흐려놓는다.
'외인구단'같은 캐릭터들이 펼치는 한스런 복수극, 그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
설경구의 연기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연기도 교과서적이다.
상필역으로 나오는 정재영만 녹아든 연기를 한다.
'배달의 기수'보다 2% 나은 전투장면, 억지스런 감상, 상투적인 캐릭터…. 실망스런 '실미도'다.
강우석 감독, 갈수록 무뎌진다.
filmto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