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 부부-(2)생이별 경험자의 조언

몇해 전 1년 정도 외국에 체류한 적이 있다.

교환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전공영역(가족학, 미술치료)에서 선진국의 학문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어떤 면에서 내가 청년기에 가졌던 유학의 꿈을 반 정도 이룬 셈이기도 하다.

체류하는 동안 미국심리학회(APA)의 거대한 지성의 물결을 경험하기도 하고, 대학교의 학과에서 주최하는 알짜배기 워크숍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한국에 관심 있는 교수와 한국어와 영어를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우정도 쌓았다.

주말엔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으로 놀러가 다람쥐와 사슴을 만나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환상적인 1년간의 휴가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남편의 지지와 배려 덕분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말하자면 외기러기 아빠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 때 남편이 어떤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꼈는지 깊이 알지 못한다.

단지 그가 외로움에 지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 둘과 아내가 배낭 메고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는 남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살았던 작은 도시의 대학 내 아파트만 해도 자녀의 교육을 위해 친구 집이나 친척집에서 6개월, 1년을 얹혀사는 기러기가족이 두 집이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 결정을 잘 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부에 대한 의무보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되 단기 혹은 장기적으로 별거상태에 있는 가족들이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슈가 되고 있는 '기러기 가족'이다.

기러기는 좀 자라면 새끼를 먼 곳으로 떠나보낸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을 할 때 '주말부부'가 유행을 하더니, 이제는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해외별거부부' 현상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과거 아버지의 국내 주거이동이 이제는 어머니·자녀의 국제적 주거이동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지난해 부모의 해외근무나 이민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조기유학으로 떠난 초.중.고등학생이 1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IMF경제난 이후 6배 이상이다.

그리고 전체 유학생 셋 가운데 하나가 초등학생임을 감안할 때 자녀동반 어머니의 숫자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목적은 자녀의 외국어능력 향상이며, 국제화 감각을 익히는 것이라고 한다.

또 대부분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고, 과도하게 사교육비를 투자하느니 오히려 해외 유학을 시키는 것이 낫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가족 간의 완전한 합의 없는 유학은 자녀의 장래를 그르칠 뿐 아니라 가정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자녀교육을 위한 이별이 과연 가족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지 기러기 가족을 계획하는 부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부부간의 갈등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가 떠난다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헤어지면 부부의 갈등은 깊어질 뿐이다.

아이들은 갈등의 해결방식이 도피하는 것이라 배우고, 아버지의 생각과 어머니의 생각을 통합할 기회를 잃는다.

특히 이 때 떠나는 아이들이 부모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한 사춘기라는 점에서 부부간의 갈등은 반드시 해소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교육이 모든 가족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면 누가 가족의 분산을 원하겠는가? 우리의 자녀들이 대구에서 배우든 뉴욕에서 배우든 세계화된 지식과 지혜를 키워나갈 수 있다면 굳이 가족의 생이별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문제를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같은 현실이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고 가족해체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신문지상에서 본 외기러기아빠의 쓸쓸한 죽음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남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며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이영석(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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