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기(영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강좌엔 수강생이 많다.
작년에 개설한 교양강좌 '성공전략협상론'엔 500여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1000여명이 수강신청을 했지만 500여명은 탈락(?)시켰다.
강의실이 비좁아서다.
채점.출석.과제 등 학사관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성공전략 협상론'. 예전 같았으면 정치외교학과.행정학과.무역학과.경영학과 학생들이나 관심을 가질 강좌다.
그러나 그의 강좌에는 공대생.의대생.음대생.미대생들까지 몰린다.
체육특기생들도 수강신청을 한다.
일반인들의 청강 신청도 있다.
공인중개사, 손해사정인…. 왜 그럴까?
'흑백의 시대'가 아니라 '회색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명령과 복종의 시대가 아니라 협상과 타협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 효율성이 강조되던 시대엔 협상이 필요 없었습니다.
필요하다면 어디든 도로를 낼 수 있었죠. 땅을 파면 어디든 쓰레기 매립장이 됐습니다.
불평은 없었죠.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우 교수는 권위주의 시대엔 정부가 결정하면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하던 시대는 끝났다.
전체와 개인간의 이익, 혹은 개인과 개인간의 이익과 관련된 모든 정책은 설득과 협상을 통해 받아들여져야 할 과제가 됐다.
우 교수의 협상론 강좌에 수강생이 몰리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 교수는 학점을 후하게 주지 않는다.
수업이 지루해질만 하면 웃겨주는 유머감각도 없다.
학사관리는 깐깐하다.
출석 체크는 야속할 정도로 철저하다.
한번 결석에 무조건 2점이 날아간다.
과제가 많아 수강생들은 머리를 싸매야 한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해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머리를 써 계획을 세우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과제는 대부분 사회 문제에 대해 스스로 아젠다를 발굴하고 해결 전략을 세우는 것.
과제는 팀원끼리 힘을 합해야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과제 수행팀도 학생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제비뽑기로 팀을 짠다.
마음 맞는 친한 친구 대신 낯선 다른 과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일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학생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불평을 알지만 우 교수는 '제비뽑기'를 고집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 이해하기 힘든 상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상대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좋은 협상경험이기 때문이다.
우 교수의 수업은 야생마를 쫓듯 빠르게 진행된다.
학생들은 숨돌릴 틈없이 달려야 한다.
그들은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지만 들판의 야생마처럼 쫓긴다.
조는 사람도, 딴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다.
도무지 틈이 없다.
우 교수는 물고기와 씨름중인 낚시꾼 같다.
낚싯대의 팽팽한 긴장감. 이 팽팽한 긴장이 그가 진행하는 강의의 유일한 재미다.
"피곤하다". 수업을 들어 본 학생들의 반응이다.
그럼에도 수강생들이 몰린다.
"나도 피곤하다". 우 교수의 소감이다.
그럼에도 그는 말몰이식 수업을 고집한다.
그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수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강의는 인문학.사회학.공학.경영학.행정학을 넘나든다.
교수가 되기 전 그가 겪었던 다양한 경험이 이런 박진감 넘치는 수업을 가능케 한다.
서울시정 개발 연구원, 아시아 태평양 연구센터 연구원, 국토개발 연구원…. 그는 영남대학교로 오기 전 여러 연구소에서 10여 년을 근무했다.
시험방식도 독특하다.
학생들은 아무리 많은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아도 상관없다.
복사가 아니라 필기한 노트라면 뭐든 펴놓고 시험 칠 수 있다.
암기의 고통은 없지만 만만한 시험은 아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답안을 작성하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답안은 생각의 깊이와 준비한 자료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시간은 100분. 그러나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더 준다.
우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협상론은 글쓰기나 말하기처럼 필수 교양이라고 말한다.
"농업협상, 어업협상 등 거창한 것만이 협상이 아니다"며 "부모와 자식, 형제와 친구, 연인과 부부간에도 협상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 교수는 그러나 "한 개를 주고 한 개를 얻는 것이 협상은 아니다"며 "때로는 한 개를 주고 열 개를 받을 수 있다.
때로는 열 개를 그냥 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동기 교수는 '성공전략 협상론' 외에 재무행정론. 위기관리론. 정부마케팅 등의 강좌를 맡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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