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대째 '유도인 길' 8단 류영대(53)씨

유도 공인 8단인 류영대(柳永大.53.대구시 효목동)씨는 3대에 걸쳐 유도인의 길을 걷고 있다.

선친 때부터 시작한 유도가 자신을 거쳐 아들에까지 대물림된 것.

류씨 집안의 유도 이력은 선친 류이호(柳二浩.1980년 작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유도학교(현 용인대) 1회 졸업생인 선친은 경찰 공무원과 대구상고 유도 교사 등을 거쳐 1960년부터 동산유도관(서성로)을 설립해 후진 양성에 나선 유도인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접골사 면허 1호 소지자였던 선친은 경북대병원에 골절, 탈구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직접 가서 고쳐주기도 했다.

선친의 뜻을 받들어 용인대에서 유도를 전공한 뒤 선친이 작고할 때까지 함께 접골원을 겸해 유도관을 운영했던 류씨는 "당시에는 유도 교습보다 골절, 탈구를 치료한 뒤 벌어들인 수입이 더 많았다"고 기억했다.

류씨는 그 뒤 '유도정복술(柔道整復術:유도에서 경락.관절의 구조를 이용해 골절.탈구 등을 치료하는 분야)'을 집필해 3년간 용인대 조교로 일했지만 유도정복술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자 82년 대구로 내려와 동산유도관(성당동)을 설립했다.

87년에는 대구시립 두류유도관을 인수해 주부들을 위한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만들고 두류수영장과 연계해 지역의 유도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대구유도협회에서 갑작스레 두류유도관의 직영을 결정하면서 본의 아닌 외도를 하게 된다.

10여년동안 요식업.건설업 등을 하면서 인생의 경험을 넓힌 류씨는 동업하던 건설업자와 갈등을 겪게 되자 미련없이 사업을 포기하고 지난해 3월 유도관을 재개관하면서 본업인 유도인으로 다시 돌아왔다.

40여명의 관원들과 함께 뒹굴며 땀을 흘리고 있는 그는 요즘 매우 행복하다.

한의대생.물리치료사들이 그에게서 유도정복술을 배우기 위해 많이 찾고 있기 때문. 류씨는 "유도정복술이 정형.신경외과, 물리치료 등에 영역을 빼앗겨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전통의 맥은 이어야 한다"며 "일본에서는 대체의학으로 유도정복술이 매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 후배이자 제자이며 가업을 이을 아들 현욱(炫旭.23.용인대 유도학과 3년)씨가 옆에 있어 든든하다.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레 유도를 접한 현욱씨는 "유도관이 많이 생겨 유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새로워지고 생활스포츠로 자리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유도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앞으로 가야할 길을 이미 정해 놓았다.

현재 대구에는 태권도 체육관이 600여개에 달하지만 유도관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위험한 운동'이라는 선입견이 대중화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류씨 부자는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유산소운동이어서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유도예찬론을 폈다.

류영대씨는 "유도는 우리에겐 생활 그 자체이자 종교와 같다.

손자가 생기면 또 유도를 시킬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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