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삶-답곡마을 조선족 새댁들

새싹이 돋아나듯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가 가득 찬 산골마을의 올 봄은 유난히 따스하다.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영양군 석보면 답곡마을.

10여년 전만 해도 이곳 청년들은 신부감을 구하지 못해 실의에 빠져있었다.

마을 분위기도 자못 침울했다.

그러나 중국 연변에서 시집 온 7명의 새댁들이 어우러지면서 마을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인정 넘치는 산골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중국에선 비닐하우스 농사를 구경도 못한 새댁들이지만 이젠 겨울철 하우스에서 고추묘를 직접 키울 만큼 고추의 고장 영양사람이 다 됐다.

중국 용정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지난 95년 이 마을로 시집 온 방연화(35)씨는 이젠 초등학생 두 딸을 둔 어엿한 어머니가 됐다.

처음엔 향수병에 연일 눈물을 훔치며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은 시아버지 모시고 남편과 자녀들 뒷바라지하며, 농사철이면 하루 해가 짧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다.

"갓 시집왔을 땐 분명 똑같은 우리말인데도 웬 영어가 그렇게도 많이 섞여 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몇해 동안은 일상 대화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의 연길과 용정에서 이곳으로 시집오는 '고향 후배'들도 많이 늘었다.

이곳 답곡마을에만 중국 출신 새댁이 7명이나 된다.

서로 의지하며 언니, 동생이 됐다.

남편 이원형(43)씨는 "처음엔 아내가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무척 힘들어 했는데, 지금은 풍습도 몸에 익혔고 연변에서 시집 온 후배들에게는 언니 역할을 하며 어려움도 들어주는 등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97년 결혼한 김현옥(30.용정시 출신)씨는 "처음엔 언어와 생활습관이 너무 달라서 반년쯤 외부 출입도 않고 TV를 보며 한국문화와 말을 익혔다"고 했다.

김씨는 "농사일도 첫해엔 무척 힘들었지만 이젠 경운기 등 농기계도 자유자재로 다루며 8천평 고추와 배추농사를 남편과 함께 짓는다"고 자랑했다.

같은 마을 김향숙(38.연길시 출신)씨는 "지난 2000년 연화.현옥이와 안동에 있는 운전학원을 한달동안 힘겹게 오가며 난생 처음 운전면허를 땄을 때는 온통 내 세상 같았다"며 웃음지었다.

마을 새댁 중 일부는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중국의 부모형제들을 마음대로 초청하지 못한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정부 차원의 배려가 있으면 이들이 정착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김명희(26)씨는 "아직 답곡리에는 스쿨버스도 들어오질 않아서 농사철에는 자녀들 등하교에 어려움이 많다"며 교육 당국이 좀더 관심을 가져줄 것을 희망했다.

마을 노인들은 "지난 10년전만 해도 마을엔 노인들과 노총각들뿐이고, 젊은 부인과 아기들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젠 초등학생도 많아 사람사는 마을이 됐다"며 즐거운 표정이다.

영양군내에는 답곡리 7쌍을 포함, 모두 50여명의 총각들이 연변의 조선족 처녀들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곳 조선족 부인들은 이제 어엿한 아내로, 어머니로, 자랑스런 전업농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하고있다.

이들 중 40쌍은 서울에서 제조업을 하는 이길웅(66.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출신)씨가 징검다리 역할을 한 덕분에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이씨는 지난 90년초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일년중 100일 정도는 중국에서 머문다는 것. 이때마다 이씨는 연변의 조선족 마을, 특히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알뜰살뜰한 처녀들을 수소문해, 장가 못가 애태우는 고향 총각들에게 중매를 섰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에 처녀, 총각들의 성격과 양쪽 집안 사정 등 세심한 부분까지 메모해 두었다가 맞선을 주선해 성혼까지 시켰는데 지금껏 결혼한 부부 중 단 한쌍도 헤어진 경우가 없다고 한다.

특히 고향을 찾을 때마다 이씨는 이들 부부집을 빠짐없이 들러 "잘 살고 있느냐", "자녀를 더 낳아라"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아 이들에겐 대부(代父)로 통하고 있다.

김용암 영양군수는 "영양지역 총각들을 위해 마치 자기 일처럼 애쓰는 이길웅씨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작년에 표창장을 주기도 했다"고 했다.

영양군의회 이병철 의장은 "조선족 출신 주부들 모두가 높은 교육열로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고, 특히 중국어도 열심히 가르치고 있어 장차 이들 자녀들 모두가 영양군의 큰 재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랑했다.

영양.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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