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스캔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는 남녀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고려가요를 이르는 명칭이다.

영화 '스캔들'은 유교 사상이 엄격했던 조선 후기 18세기경의 남녀상열지사를 다루고 있다.

세도가의 정실인 조씨 부인은 은밀한 성적 유희를 즐기며, 양립할 수 없는 철저한 이중 생활을 한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출세도 마다한 채, 시화를 즐기며 치기 어린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조원. 이들은 사촌 남매지간이며, 근친상간적 첫사랑이다.

조씨와 조원은 여자를 대상으로 내기 게임을 시작한다.

이뤄질 수 없는 운명을 타인에게 대치해 대리 만족을 얻으려는 의도로 말이다.

조씨는 조원에게 남편의 소실을 범해달라고 제안하고, 조원은 이제 막 미끼로 떠오른 정절녀 숙부인 정씨를 정복할 계획을 꾸민다.

정씨는 정혼한 상태에서 남편의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하고, 과부의 몸이 된 불행한 여인. 9년간 수절하여 열녀문까지 받았다.

정씨는 운명에 순종하며, 모든 열정을 천주학을 통한 서민 계몽과 봉사에 바치며, 세속적인 욕망은 접어둔 채 살아간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호색가의 프로포즈에 완강히 저항한다.

통속적인 방법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어렵게 되자, 조원은 편지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아름다운 연애편지들이 오가며 서로에게 조금씩의 변화가 일어난다.

조원은 자신의 방랑 끼의 이유를 고백한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버리고 떠난다고' 조원은 그녀를 농락하려다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정씨 부인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성에 대한 짙은 애정을 드디어 받아들인다.

중간에 놓인 조씨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여, 첫사랑 조원에 대한 질투심으로 둘을 갈라놓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런 과정에서 조원은 정씨 부인의 시동생에게 칼을 맞고 죽음을 맞는다.

애인의 죽음을 접한 정씨는 아련한 사랑의 기억을 껴안으며 그의 뒤를 따른다.

살얼음 위를 한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기꺼이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이승에서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완성한다.

만천하에 조씨 부인의 이중 생활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자, 궁지에 몰린 조씨는 보복을 피해 도피 길에 오른다.

이로써 스캔들은 막을 내린다.

천하의 호색가 조원의 심리를 따라가 보자. 그는 남의 반응에 무관심하다.

그는 타인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욕망에 따라 접근한다.

불행한 여인을 탐하려는 게임을 하는 착취적인 태도부터가 그렇다.

바로 자기애성 성격이다.

계획적으로 여자를 유혹하고, 욕망이 채워지면 가차없이 버리고 마는 '돈 주앙' 증후군으로 보인다.

여자를 정복의 대상으로 볼 뿐, 공감할 인격체로 보지 않았다.

자기애성 성격의 또 하나의 단서는 여자가 화장을 하듯이, 정교하게 수염을 다듬는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얼굴을 수염으로 가려서, 뭔가 숨기고 싶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직접적인 노출을 수치스럽게 느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남의 평가와 비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정신치료적인 접근으로도 변화가 쉽지 않다.

그런 조원이 정씨 부인과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결국 진실한 사랑의 감정이 그의 병적인 성격을 치유한 셈이다.

스캔들은 비난받아야할 추문을 이르는 불명예스런 말이지만, 조원의 스캔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인간관계의 두려움에서 시작된 연애 행각이 결국 그가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코드가 맞아야 이뤄질 일이다.

누구나 선호하는 색깔이 따로 있듯이, 사랑도 선호하는 코드가 각각 있을 것이다.

조원이 그것을 찾아 헤매는 행위를 비난으로 몰고 가기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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