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설> 아이티 사태 배경과 전망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중도

사임과 망명 사태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아이티 국내 정치분열과 심각한 경제난

에 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사회도 당초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야권이 수용하지 않자 정국 분열의 책임을 아리스티드에게 물으며 사임을 간접적으

로 촉구했다.

유엔과 카리브공동체(CARICOM) 등은 아이티 사태를 주시하며 국제군 파견을 적

극 검토했으나, 아이티에서 자체적으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파견을 미

루겠다고 결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아리스티드가 망명하는 길 외에는 다른 해결방안

이 없는 상태로 남겨졌다.

특히 자신의 반대 세력인 군을 강제해체하고 자신의 추종세력으로 5천명의 경찰

만 남겨놓은 점도 이번 무장봉기를 주도한 군 출신 인사들의 재결집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조직이 엉성하고 장비마저 허술한 경찰은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로 기강이

급격히 무너져 내리면서 일부는 외국으로 탈출하는 등 아이티 정부의 치안을 확보하

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반정부 무장세력의 지도자로 알려진 기 필립 전(前) 경찰청장은 새 정부가 들어

서면 군을 다시 조직해야 하며, 과거와 같이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입

장을 밝혀왔다.

2000년 총선과 같은 해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야권은 '원천 부정선거'라며 아

리스티드 사임이 없고는 총선 재실시에 동의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해왔다.

외국의 식량원조에 의존하는 학생 9만명을 비롯한 빈민 26만8천명으로 대변되는,

광범위한 경제난은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민중들을 돌아서게 했다. 800만명 아이티

전체 국민의 평균 수입은 하루 1달러가 조금 넘고 국민의 3분의 1은 만성적인 영양

실조 상태에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지지하던 시민들은 경제난이 계속되고 국제사회 마저 2000

년 의회 선거 부정을 이유로 수백만달러의 원조금을 동결하면서 반정부 시위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그 동안 한달 가까이 소요사태가 격화되면서 외국 원조기구의 식량 보급로가 반

정부 무장세력에 의해 봉쇄됨으로써 대규모 인도주의적 재앙 위기와 함께 수십만명

의 '보트피플' 탈출 사태가 우려됐다. 그러나 국제 치안군의 파견과 함께 아이티 정

국이 안정을 찾아가면 최소한 대규모 난민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리스티드는 처음으로 자유롭게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는 1990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나 이듬해인 1991년 군사 쿠데타로 망명을 떠났고 1994년 미국의 개입으로

정권을 회복했다. 이후 1996년 아리스티드는 임기 종료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주요 야당이 선거를 거부하고 폭탄테러가 발생하는 등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가

운데 2000년 11월 실시된 대선에서 91.8%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출된 아리스티드 대

통령은 올들어 총선 재실시를 약속했다.

야권은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고 치안 유지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서는 총선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야권은 또 아리스티드의

대통령직 유지와 함께 거국내각을 통해 권력을 분점토록 하겠다는 국제사회의 평화

중재안도 거부했다.

이에 아리스티드는 오는 2006년까지로 돼있는 임기를 지키겠다고 맞섰으나, 반

정부 무장세력이 수도 공격을 경고한 가운데 미국 등 국제사회마저 등을 돌리자 사

임 발표와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파나마를 제외하고는 공식적

으로 망명처를 제공하겠다고 선뜻 밝히는 국가도 없는 상태다. 미국 정부도 아리스

티드의 망명지에 대해 '제3국'이라고만 언급해 지난 1991년과 같이 아리스티드에게

망명처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아리스티드가 과거와 같이 재차 복귀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리스티드는 미국이 "그의 계속적인 통

치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며 이 같은 위기 대부분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밝힌 지

하루 만인 29일 결국 사임했다.

앞으로 아이티 정국은 아리스티드가 사임을 발표하고 망명길에 오름으로써 그

동안 아리스티드 정부에 반대해온 야권 연합체 민주주의 강령과 반정부 무장세력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러 상황을 두고 볼 때 아이티 정국이 신속히 안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제 치안군 파견이 이뤄지면 반정부 무장세력이 미미한 상황에서 유혈

충돌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민주주의 강령이 무장봉기를 주도한 과거 군부 출신 인사들과는 거리를

유지해 온 만큼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양측간 대립은 재차 아이티를 혼란으로 몰아

넣을 수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동시에 아리스티드 지지 세력이 순순히 새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반 아리스티드 세력과 충돌할 경우 국제 치안군의 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필립 전 청장은 자신들이 수도로 입성할 것이나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것이라

고 입장을 밝혔으나, 아리스티드 지지세력과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경제난에

다 생필품 가격이 폭등한 상태에서 약탈행위도 심각해 치안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

라는 지적이다.

또한 대통령 사임에 따라 대통령직을 승계한 보니파스 알렉상드르 아이티 대법

원장은 아이티 헙법상 의회로부터 새 지도자로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의회는 연초 의원들의 임기가 끝난 이후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어 권력공백이 발생

할 수 있다.

법학자 출신으로 정직하다는 평판이 높은 60대의 알렉상드르 대법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직을 맡게 됐다"면서 국민들에게 보복을 자

제하고 질서를 되찾을 것을 촉구했다.

앞으로 아이티 정국 안정은 ▲국제치안군의 신속한 파견▲친반정부 세력간 협조

▲다양한 정치세력간 협상에 의한 새 정부의 원만한 수립 등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

으로 분석된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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