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달에 8천500km 출장가는 사나이" 고봉화(42)씨

'1개월에 8천502㎞의 거리를 104시간 동안이나 기차를 탄다'.

철도청 기관사 이야기가 아니다.

경북도청의 기능직7급인 고봉화(42)씨는 월.수.금요일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서울 출장길에 오른다.

그가 맡은 업무는 문서송달. 도내 각 시.군에서 올라온 서류와 도청의 관련 서류를 행정자치부 등 중앙관련부처에 전달하고 중앙부처 문서를 다시 가지고 오는 일이다.

동대구역~서울역까지 편도 327㎞거리를 8시간 동안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왕복한다.

요즘같이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된 사회에서 아직까지 이런 구시대적인 업무가 있을까. 그렇지만 고씨는 이 업무가 적어도 몇 년간은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1월부터 새로운 행정문서관리 시스템을 갖춰 대부분의 문서는 전자문서로 대체됐지만 문서에 따라가는 각종 첨부물과 비밀문서는 직접 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북도의회 총무담당관실에서 근무하다 이 일을 제의받았을 때 고씨는 쉽게 생각했다.

서울을 오가는 여덟시간 동안 잠도 자고 편안하게 쉬면 될 것 같았다.

"오산이었습니다.

여행하면서 기차 타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죠. 4시간 꼬박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기차에서 잠은 생각도 못한다.

중요 문서들이 든 가방을 한시도 손에서 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갈 때도 이 가방만은 들고 간다.

가방을 보물단지 다루듯 하다보니 돈가방이 아닌가하는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대부분 도지사 직인이 찍힌 공문서이고 비밀문서도 있다보니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분실이라도 한다면 큰일 아닙니까"

고씨는 빠르고 편한 새마을호 열차를 두고 늘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한다.

여비규정상 6급이하 공무원은 새마을호 대신 무궁화호 열차에 맞춘 출장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고속철도가 개통되어도 여비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고씨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남들이 대신 해줄 수 있는 업무도 아니어서 2년 전 빙부상을 당했을 땐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나와 서울을 다녀왔다.

지난해엔 휴가도 가질 못했다.

그래도 보람도 있었다.

그만뒀던 방송통신대 공부를 계속, 지난해 2월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기차를 타는 시간동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중앙부처에 가면 경북도를 대표해 문서 등을 수령해오기 때문에 하자없이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일도 도민들을 위한 일이니까 나름대로 보람있는 일이죠".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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