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산내면 내일리에 있는 진목정(眞木亭)은 가톨릭 성지다.
대원군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가톨릭 신자들이 관가에 잡혀 처형된 후 육신이 땅에 묻혀서 흙이 된 곳으로 최근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진목정을 지나 해발 600m의 단석산 정상에 있는 수의지(守義池)는 방갈로와 청소년 수련원, 5만여평의 잔디밭 광장, 조각공원, 야외공연장, 자연학습장으로 개발돼 있으나 정작 성지인 진목정은 잊혀진 상태로 남아있다.
이로인해 수의지로 올라가는 길목 능선에 있는 순교자의 무덤까지는 차량이 들어갈 수 있으나 순교자들이 숨어 살던 단석산 중턱 바위굴까지는 여전히 개발이 안된 상태다.
김유신 장군 유적지로 화랑들이 훈련할 때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만들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수의지도 일부는 훼손이 되어 유적지를 찾아 나선 관광객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진목정 성지는 교구에서 주변의 헌집과 논밭을 일부 사들이고 10년전 성건본당 신자들의 순교지 현양 미사를 계기로 전국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지로 찾기 시작했다.
자치단체에서도 유적지를 잇는 도로망 확충 등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곳 진목정 성지와 단석산 정상 수의지에 이미 개발돼있는 시설물 등을 연계 개발할 경우 전통문화와 자연의 호연지기를 함께 배울수 있는 새로운 명승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866년 대원군의 병인년 대박해를 피해 온 김해 출신 허인백(야보고)과 서울출신 이양동(베드로), 충청도 공주 출신 김종륜(루까) 등은 언양 간월산 죽림골에서 만났다.
그들은 한 곳에 여러 명의 신자들이 모여 있으면 포졸들에게 들킬 염려가 많기 때문에 셋이서 의논하여 산중을 헤매면서 다른 곳을 찾다가 경주땅으로 들어서게 되었으며, 산내면 골짜기에서 바위굴을 발견하고 그곳을 임시 거처로 정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무덤을 파헤친 사건으로 인하여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으며 지방 포졸들도 혈안이 되어 산골짜기를 뒤지면서 신자들을 찾아 내려 하였다.
바위굴에 숨어살던 허인백 등은 결국 감영 포졸들에게 들켜서 잡히고 만다.
경주 감영에서 두 달 정도 감옥생활을 하면서 몇번의 심문과 고문을 당하였지만 당당하게 버텼다.
대원군 박해의 특징은 천주교 신자들을 배교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참후계(先斬後啓)의 명령에 따라 때가 되면 무조건 사형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해 7월 하순 울산 병영으로 이송돼 그곳 장벌대에서 차례로 순교했다.
그 후 그들의 시신은 허인백(야보고)의 부인 조애 여사의 노력으로 진목정 공소 뒷산에 합방됐다.
그 후 대구교구는 진목정을 순교자의 묘소가 있는 성지로 관리해 오고 있다.
1932년 5월28일 순교자들의 유골을 감천리 교구 묘지로 이장하였다가 1973년 다시 복자 성당(현 신천 성당)으로 옮겼으며 지금 이곳에는 헛무덤(가묘)만 남아있을 뿐이다.
단지 유적지 안내판만이 그 유래를 소상하게 적고 있어 쓸쓸하게 보인다.
또한 순교자들이 호랑이굴을 빌려서 생활할 때 바위굴 산중턱에 있는 큰 바위에서 밤중에 호랑이가 이따끔 울어대 근처 다른 짐승들이 순교자들이 머무는 굴에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종갑 산내면장은 "옛날부터 참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진목정이라고 불려온 유서깊은 곳이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대원군 박해에 저항하며 순교한 성지로서 개발을 서둘러야 함에도 늦어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