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고갱이-삼국의 불교수용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때는 삼국시대이다.

당시 불교는 종교이자 철학이었다.

새로운 사회 윤리관 확립에 기여하고 정신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또 종교의 범주를 넘어 중국 및 인도의 문화를 전해줌으로써, 한국 고대문화 성립에 큰 공헌을 했다.

삼국 중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중국 북조의 전진 왕이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한 것이 시초였다.

소수림왕은 당시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수림왕은 백성들에게 "부처를 받들고 복을 구하라"고 교시하고, 393년 광개토왕은 평양에 절을 아홉 군데나 지었다.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보다 12년 늦은 침류왕 원년(384년)이었다.

중국 남조의 동진에서 온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했다.

왕은 그를 궁궐로 맞아 받들면서 불법을 들었다.

백제 역시 왕이 직접 교시해 대대적으로 권장, 보급했다.

고구려.백제와 달리 신라이 불교 수용에는 고난이 따랐다.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눌지왕(417∼458년) 때. 고구려의 묵호자가 신라에 들여왔으나 공식 경로는 아니었다.

그는 경북 선산에 굴을 파고 포교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당했다.

신라는 토착세력이 강했고 국가체제나 왕권의 확립이 늦었다.

기존의 원시신앙의 벽을 뚫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법흥왕(514~540년) 때 신라와 남조의 양나라 승려 원표가 신라왕실에 정식으로 불교를 전했다.

법흥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수도 안에 절을 세움으로써 불교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신라귀족들은 전통 신앙의 성지를 훼손하고 오랑캐의 신인 부처를 모시려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귀족들의 반발은 왕권강화와 귀족의 입지약화를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왕은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이차돈을 처형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후 신라는 황룡사 9층 목탑, 불상, 종 등을 차례로 만들어 불법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다.

한편 신라의 불교수용은 고구려보다 150년 가량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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