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대통령 탄핵소추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과 맞물리면서 청와대(靑)-여당(與)과 3야당(野)이 더욱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맡아 긴급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통령 탄핵 후폭풍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는 일단 공황 속으로 빠져 들었다.
대통령이 있으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인 만큼 청와대가 어정쩡한 입장에 놓이게 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을 듯하다.
대통령 권한 대행의 한계로 고 총리가 국정의 주요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관리형으로 평가받는 고 총리도 현상이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일에 치중해 국가의 주요 현안도 덩달아 줄줄이 미뤄질 전망이다.
총선 정국이 본격화되면 야권이 청와대를 향해 공세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직무가 정지됐지만 대통령이 청와대에 거주하는 이상 영향력을 펼칠 수밖에 없어 거주지도 옮겨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벌써 야권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총선 영향력을 들어 대통령 하야(下野)에 대한 목소리도 커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중립내각 구성론, 총선 연기론, 개헌론 등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의결 이후의 조치에 대해 백가쟁명식으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총선 연기론에 대해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총무가 반대하고, 개헌론에 대해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대표가 시기상조론을 펼치는 등 의견불일치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언제든 재연돼 현실화 할 수 있는 논의들이다.
그만큼 정국 불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정 공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자 야권은 일단 국정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3야당 대표가 회동해 국정 조기안정 방안도 논의한 것도 탄핵으로 국정 불안을 초래했다는 부담을 계속 떠안고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 조짐이 나오고 있는 탄핵 역풍이 지속돼 자칫 총선을 망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열린우리당은 '의회 쿠데타'라며 야권을 향해 총력 투쟁을 외치고 있다.
우리당은 또 정동영(鄭東泳)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헌정수호와 국정안정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국 안정을 꾀하는 한편 대야 투쟁의 수위를 높여갈 예정이다.
우리당은 법적 대응책도 다양하게 논의했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기표소 바깥에서 공개투표하며 무기명 비밀투표가 지켜지지 않은 점 등을 들어 투표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법원에 탄핵소추안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할 계획이다.
또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의 직무정지가처분신청과 한나라당-민주당 해산 소송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세력 간의 거리 대결도 당분간 숙지지 않을 듯하다.
12일 여의도는 밤 늦게까지 집회와 시위로 몸살을 앓았고,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 규탄대회가 벌어졌다.
이같은 거리 대결이 계속될 경우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리란 것은 분명한 이치다.
대통령 재신임과 총선 연계는 이제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연계할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거야(巨野)에 의해 탄핵 의결돼 한계를 절감한 마당에 여당이 총선에서 질 경우 헌법재판소 결정에 상관없이 노 대통령 스스로 하야 등 모종의 결단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야당도 모든 역량을 '올인'할 것이 확실시된다.
또한 대통령 권한정지에 따른 정국 불가측성을 어떤 방향으로든 결론 짓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총선 이전에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일정이 너무 빡빡한데다 헌재가 굳이 총선에 영향을 주는 부담을 무릅쓰고 결정을 앞당길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총선에서 다시 한 번 여야는 사활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사진 : 13일 오전 탄핵안 발의로 인한 대통령 대행 체제 첫날의 각당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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