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미학-그랑블루

인간의 자살 심리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되는 영화다.

자크와 엔조는 오랜 죽마고우다.

엔조는 자만심이 넘치는 골목대장이었고, 자크는 수줍고 말없는 외톨이였다.

엔조는 어머니의 지나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자크는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외롭게 자라난다.

둘은 상반된 환경의 아주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에 대한 애착과 호기심으로 우정을 키워나간다.

어느 날, 어린 자크는 잠수사고로 아버지마저 잃게 된다.

고통스럽게 울부짖었을 뿐, 갑작스런 사고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자크의 눈 앞에서 아버지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인해 세상으로 향한 관심을 닫아버린다.

모든 것이 허무하므로 삶에 대한 열정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적으로 여긴다.

자크는 오직 바다와 돌고래를 가족삼아 살아간다.

장성한 엔조는 잠수 대회의 세계 챔피언이 되어 명성과 부를 누린다.

엔조는 어린 시절 잠수 실력을 겨루던 자크를 수소문한다.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여 자크는 세계 잠수대회에 엔조와 나란히 출전한다.

세상을 등지고 바다에서 살아온 자크는 육체마저도 바다에 적합하게 바뀌어 있었다.

마치 돌고래처럼. 이런 자크에게 잠수는 아주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당연히 대회에서도 자크가 신기록을 세우고, 엔조를 누르며 세계 챔피언이 된다.

경쟁 의식이 강한 엔조는 패배감을 안고 산다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모한 잠수를 강행한다.

패배보다는 죽음을 선택한다.

친구의 자살로 자크는 깊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자크는 처음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의 끈질긴 사랑도 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자크는 애인을 뒤로 한 채 바다의 심연으로 끝없이 잠수해 가면서, 수면위로 되돌아올 이유를 찾지 못한다.

엔조와 자크는 자살했다.

이들은 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엔조의 경우를 살펴보자. 어머니가 지나치게 자식에게 몰두하여, 엔조는 이기적이고, 좌절에 적응하기 어렵고, 관심을 끌려는 지나친 욕구를 지닌 성격으로 자랐다.

어머니의 비현실적인 기준이 마음에 새겨진 엔조는 피할 수 없는 실패에 대해서도 계속 좌절감을 느끼며, 자기 비하감에 빠져든다.

저항할 수 없었던 어머니에 대한 공격심이 자신에게로 전치되어 자살한 것이다.

패배한 자기를 버릴지도 모를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자크는 어떠했을까.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것이든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자크는 모든 것에 허무감을 느끼고, 자신의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실존적 진공 상태'라고 할까. 또 다른 이유는 엔조에 대한 감정이다.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모든 것을 가졌던, 엔조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자살은 대개 정신적 문제가 바탕이 된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