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에서 묘목 생산이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이다.
일본인 고바야시라는 사람이 하양면 금락리에서 뽕나무 모종을 생산하면서부터다.
일본인들은 2년후 국광, 홍옥 등 사과 묘목을 들여와 재배했고, 금호강 주변에 대규모 사과재배 단지가 조성돼 '대구사과'가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일본인 농장에서 일하면서 접목 및 재배기술을 축적한 이 지역 주민들이 해방후 접목 과수묘목을 생산하면서 경산이 '묘목의 고장'으로 부상했다.
#묘목뽑기
묘목의 고장 경산에서도 드물게 2대(代)에 걸쳐 묘목농원을 하는 김성태(63).정락(36)씨 부자(父子)의 삼성농원 묘목밭을 찾았다.
모두 2만여평에 묘목을 재배하고 있는 이들 부자는 매일 오전 6시30분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한다.
금호강변에 위치한 5천여평의 복숭아.자두 묘목밭에는 지난해 접목을 한 수많은 묘목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가슴 높이 정도로 자라 있었다.
곧바로 판매장으로 옮겨심기할 묘목뽑기 작업을 시작했다.
오랜 가뭄 때문인지 땅속은 삽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먼지까지 폴폴 날린다.
정락씨가 "묘목 주위 땅을 삽으로 힘껏 밟고 흔들어 공간을 확보한 후 묘목을 잡고 삽을 지렛대로 이용해 들어 올리면 묘목이 쉽게 뽑힌다"며 작업요령을 일러준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삽은 잘 들어가지도 않고 힘을 써도 잘 뽑히지 않는다.
잔뿌리가 많아야 잘 자라는데도 삽으로 잔뿌리를 자르는 경우가 더 많다.
옆에서 함께 일하던 인부들이 "애써 키운 묘목를 쓰지도 못하게 하지 말고 일 좀 잘 하라"며 핀잔을 준다.
작년에는 복숭아.자두 등 핵과류 묘목들이 값도 올랐고 잘 팔린 반면 사과 묘목은 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정반대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된 데다 지난해 핵과류들이 잦은 비와 태풍의 영향으로 수입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락씨는 "최소한 일년 전에 접목을 해 키워야 하나 다음해 수요 예측을 할 수 없어 투기성이 강하다"며 묘목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뽑은 묘목은 흙을 털어 모은 후 트럭에 싣고 하양읍내 판매장으로 옮긴다.
접이 붙지 않은 묘목은 따로 모았다가 마르면 불태운다.
옮겨진 묘목을 열뿌리씩 끈으로 묶었다.
수분이탈 방지를 위해서는 이들 묘목을 임시로 심어 놓아야 한다.
포클레인으로 30㎝ 이상 깊이 판 땅에 묘목 종류별로 심고 나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주느라 허리 펼 틈도 없다.
농막에 앉아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나자 자두 묘목을 뽑아야 한단다.
5시간 가까이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를 반복하고, 발로는 삽을 힘껏 밟아서인지 허리가 아파온다.
온 몸은 먼지투성이지만 이마와 등에서 흘러내린 땀이 봄바람에 식어갈 때는 상쾌하다.
#묘목에 접붙이기
과수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질 좋은 묘목 생산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묘목 접을 잘 붙여야 한다.
때문에 접붙이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숙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접사 경력 28년째라는 여홍재(61)씨는 "요즘에는 아무나 칼을 잡지만 예전에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접붙이는 칼로 맞아가면서 보조자로 7, 8년을 지내야했다"고 회상했다.
30여년 경력의 김성대(66.진량읍 부기리)씨도 "일제강점기 일본인 농장에서 일했던 이 지역 많은 농민들이 해방 이후 축적된 과수 접목과 재배기술을 활용, 과수묘목을 생산해 전국에 공급했다"면서 경산이 전국 최대의 묘목시장이 된 배경을 들려주었다.
접목작업은 2인 1조로 한다.
접을 붙이는 기술자(접사)가 5~7cm 길이의 대목을 빗대어 깎으면 눈이 1, 2개 있는 파라핀 처리된 가지(접수)의 끝부분을 잘라내고 접을 붙인다.
이어 '마구대'(보조자)가 비닐로 여러차례 감싼다.
이들 접사와 '마구대'는 접 한 개 붙이는데 60원(지역내)이나 70원(외지 출장)씩 계산해 임금을 받는다.
접 한 번 붙여보자고 청했다.
그러나 접사들은 "칼은 아무나 잡는 것이 아니다"고 한 마디 한 뒤 접붙이기를 계속했다.
보기좋게 거절당한 것이다.
접붙이는 것 대신 접을 붙인 후 비닐로 감싸는 '마구대'를 해보자고 청했다.
30년과 20년 이상 마구대 경력의 이복자(73).서태연(63) 할머니가 비닐을 건네면서 요령을 일러준다.
접목 부분의 수분이 증발되지 않도록 여러차례 칭칭 감아 맨다.
쪼그리고 앉아 일러준 대로 비닐을 감았지만 팽팽히 감기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똑바로 감지 않으면 접이 붙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아무리 손을 빨리 움직여 감싸도 접사와 보조자는 벌써 묘포장 저만치 가버렸다.
이들은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 일하면 보통 3천~3천500개 정도 접을 붙인다.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구나"며 혼자 중얼거려본다.
쪼그리고 일한 탓인지 허리가 들쑤셔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자 일꾼들은 "허리 안 아프면 거짓말이제"라며 피식 웃는다.
#묘목 판매장 체험
경산 묘목의 판매 실태를 알아 보기 위해 경산 압량면 현흥리~하양읍 대부잠수교간 3㎞ 길이 도로 양쪽에 있는 '묘목거리'를 찾았다.
이곳 경산 묘목시장에는 전국 곳곳에서 묘목상인들이 찾아온다.
이날도 전남 순천, 충북 옥천, 부산, 강원도 강릉 등지 상인들이 과수와 관상수, 조경수 등을 구입하려고 찾아왔다.
걸쭉한 사투리로 흥정하는 소리가 정겹다.
남도쪽 관목들도 이곳 경산시장을 거쳐 다시 전국으로 유통된다.
그래서 이곳을 전국 최대의 묘목시장이라고 하는가.
시장은 2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형성된다.
대부분 오랫동안 판매해온 관계로 유통망이 잘 형성돼 있다.
무등록 농가는 자체 판매나 등록업체 및 매매업체를 통한 위탁판매를 한다.
요즘에는 택배 물량도 많다.
동백종묘 주인 박순권(46)씨는 전국에서 모여든 도매상들의 주문을 받고 묘목이나 나무 그루수를 세어 차량에 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수천그루의 상차작업을 하기도 한다.
경산 묘목시장은 가을에 30% 정도 형성되고, 주로 봄 한철 반짝해서 300여억원 정도 거래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심기 좋은 계절이다.
집으로 돌아가 유실수 한 그루라도 심어야겠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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