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관위, 싸움붙여놓고 쏙 빠지긴가

축구경기에서 주심이 호루라기를 홱 불어놓고 누가 무슨 반칙을 했는지 말을 안해주면 어떻게 되는가? 경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중앙선관위가 지금 똑같은 처신을 하고있다.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 선관위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하자 '의견없음'이라고 회신키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의견이라니?

탄핵이라는 '결과'에 대한 찬반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야당이 탄핵의 결정적 사유로 주장하는 노 대통령의 '선거법위반' 다섯글자는 기실 선관위가 민주당에 보낸 공문에 적시된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청와대에 보낸 공문에는 다섯글자는 쏙 빼고 그냥 '중립의무를 지켜달라'고만 했다.

노 대통령이 선관위의 지적을 경고가 아닌 '권고', 단순한 의견표명이라고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 또한 중앙선관위라 해도 틀리지 않다.

결국 우리의 정치수준에서 결과된 것이긴 하지만 쌍방에 표현이 다른 이중공문을 보낸 것이 사과거부와 국회탄핵이란 불행의 한 원인이 됐다면 중앙선관위는 지금은 '선거법 위반'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헌재에 보내야 한다.

보도대로라면 선관위는 1주일전 '선관위 전체위원회는 노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을 헌재에서 그대로 진술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헌법재판소는 그 위반사실의 경중(輕重), 중대한 잘못이냐 경미한 것이냐를 '신중하고 공정하게' 판단하면 될 터이다.

그럼에도 중앙선관위가 '의견없음'으로 변심하겠다니 "헌법기관이 정치권의 눈치나 보고 있다"는 비판이 따가운 것이다.

본란은 거듭 중앙선관위의 '당초판단', 그 초심(初心)에 대한 똑 부러지는 태도표명 있기를 촉구한다.

14년 전 선거때 중앙선관위가 야당총재와 민정당 총재이던 노태우 대통령에게 동시에 경고장을 보냈던 그 포청천 같은 기개를 기대한다.

대통령과 야당을 싸움붙여놓고 정작 자기들은 뒤로 빠진대서야 비겁하다.

정치적 부담이 무서워서 법률적 판단을 외면하는 것은 공명과 중립을 지켜야 할 선관위의 본 모습이 결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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